출근 하자마자 점심 메뉴 궁금

배식 전 식당줄서 무언의 시위

배고픔에… “많이 주세요” 읍소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잘 먹어둬

이원석 시인
이원석 시인

출근을 하면 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서로에게 묻는다. “오늘 점심은 뭐야?” 옆에 앉은 동료는 휴대폰으로 찍어둔 ‘이주의 메뉴’ 사진을 찾아 뒤적거린다. “닭갈비, 콩나물, 미역 줄기, 배추김치, 미역국이야.” 면세점으로 한차례 L카트를 끌고 출고를 다녀온 후 화물차에 롤테이너로 실려 오는 상품들을 입고하고 나면 금방 밥 먹을 시간이다. 출근을 하면 이미 배가 고프기 때문에 점심 메뉴가 가장 먼저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침을 먹고 나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화물차 기사님 역시 차에서 내려 우리를 만나자마자 묻는다. “오늘 메뉴가 뭐야?” 우리는 롤테이너를 내리며 말한다. “닭갈비에 미역국이요!” 기사님은 몸이 고되어, 어느 날은 생니가 두 개나 빠졌다. 그게 풍치 때문인지 늘 아프다던 심장 때문인지 나이가 드셔서 그런지 우린 모른다. 이가 안 좋으니 잔치국수 같은 부드러운 음식을 좋아하신다. 딱딱한 음식을 잘 못 드시니 메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오전 10시30분. 창고 안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우리의 관심사는 ‘2차 입고 차량이 언제 들어오는가’이다. 차가 빨리 들어오면 차를 받고 밥을 먹어야 하고, 차가 늦으면 먼저 밥을 먹고 차를 받아야 한다. 차가 늦는다고 연락이 왔다. 우리는 밥을 먼저 먹기 위해 서둘러 식당으로 간다.

배식이 11시부터 시작이지만 우리는 10시45분이면 벌써 식당 안에 진을 친다. 조금이라도 빨리 먹어야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고 커피도 한잔 마실 수 있다. 배식 코너와 제일 가까운 테이블에 앉아서 시간이 되길 기다린다. 너무 일찍 줄을 서기 시작하면 서 있느라 다리가 아프고 줄이 형성된 후에 너무 늦게 줄을 서면 밥을 늦게 먹게 된다. 최대한 줄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있다가 사람들이 줄을 서려는 기미가 보이면 얼른 뛰어나가서 줄의 앞자리를 확보해야 한다. 조금만 한눈을 팔다보면 이삼십명이 금세 내 앞에 서게 된다. 50분이 되면 이미 줄은 한없이 길어져 있다. 우리는 식판을 들고 커다란 밥통의 뚜껑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11시에 배식을 시작하기로 정해져 있지만 식판을 들고 줄을 서서 무언의 시위를 하고있는 이 허기진 행렬의 압박에 못 이겨 배식 관리자는 10시55분에 그 반가운 소리를 외치고 만다. “배식 시작하겠습니다!”

오늘도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는 것은 실패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을 거르고 전철을 두 번 갈아타고 출근해서 이삼백 킬로그램은 족히 실은 카트를 끌고 수 킬로미터를 오간 후에 자율배식으로 밥을 푸라고 하면 손이 제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일반 식당에서 주는 공기밥으로 다섯 공기쯤 되는 양을 퍼 담고서야 반찬코너로 넘어간다. 밥을 포함하여 다른 반찬들은 다 자율배식인데 고기는 조리사 분들이 직접 담아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간절히 읍소하는 수밖에 없다. “많이 주세요.” 정량배식이 원칙이지만 조리사분은 은근히 고기를 더 담아주신다. 급식노동자의 물밑연대다.

하지만 이 연대에 금세 균열이 생긴다. “많이 주세요!”는 대단한 전염력을 가지고 있어서 앞사람이 말 한마디로 고기를 푸짐하게 받는 것을 본 뒷사람도 역시 그 카드를 꺼내게 되는 것이다. 너도나도 많이 달라고 해서 고기를 많이 담아주다보면 끝내는 고기가 모자랄 수도 있다. 창과 방패처럼 급식하는 분들도 노하우가 생겼다. 처음엔 닭고기를 정량으로 주고, 좀 더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옆에 같이 볶아둔 양배추를 잔뜩 올려주는 것이다. 두 주걱이나 받았다고 신이 나서 테이블로 돌아와 고기를 뒤적여보면 순 양배추 뿐이라서 우리는 크게 실망한다. 그래서 우리는 멘트를 조금 수정한다. “고기 좀 더 주세요!”

왕돈까스가 나오는 날은 식당에 활기가 돈다. 모두가 아침부터 왕돈까스 이야기를 한다.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고, 힘을 쓰고 몸을 굴려 일을 하면 다시 밑도 끝도 없는 허기가 찾아온다. 일하는 사람들의 허기는 겨울날 오전 햇빛처럼 죄없이 따사롭다. 잘 먹고 돌아서며 우리는 서로에게 말한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잘 먹어 둬!”

/이원석 시인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