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레버넌트’는 19세기 아메리카 대륙을 무대로 펼쳐지는 짐승 가죽 사냥꾼의 처절한 복수극이다. 레버넌트(revenant)는 저승에서 돌아온 사람을 뜻하는데, 유령을 일컫기도 한다. 곰의 습격을 받아 치명적 부상을 당한 디카프리오는 험한 길을 가야 하는 일행에게 짐이 된다. 그 이동 과정에서 자신을 버리고 아들까지 죽인 동료 사냥꾼을 뒤쫓아 복수에 성공한다. 디카프리오는 어떻게 해서든 아들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몇 차례나 죽음에서 살아난다. 그는 말한다. “죽는 게 두렵지 않다. 이미 죽어 봤으니까.” 복수심은 그렇게 초인적 힘을 발휘하게 하는 무기가 된다.
트럼프는 2024년 7월 13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유세 도중 총격을 받았다. 총알이 오른쪽 얼굴을 스치며 귓바퀴를 뚫었다. 뛰어난 즉흥 연기의 소유자인 트럼프는 그 순간, 오른쪽 귀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그 순간에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선 채 오른쪽 주먹을 불끈 들었다. 마침 그 뒤에는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트럼프는 그때 레버넌트가 되었다. 그는 말했다. 신의 뜻으로, 미국을 구하라는 사명을 받아 다시 살아났다고. 그는 불과 9일 뒤 공화당 전당대회에 귀에 붕대를 감고 나타났다. 레버넌트의 등장이었다.
미국·이스라엘의 맹폭으로 숨진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이어 그의 차남 아즈타바가 권력을 차지한 뒤로 이란의 보복 공격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아즈타바가 이란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 지 보름이나 지났지만 아직 그의 모습은커녕 목소리조차 공개되지 않고 있다. ‘얼굴 없는 지도자’로 불리기까지 하는 아즈타바는 부친과 일가족이 사망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가공할 만한 폭격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폭격 직전 산책 나갔다가 천우신조로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아즈타바 역시 레버넌트가 되었다.
일가족을 한순간에 잃은 아즈타바의 미국·이스라엘을 향한 복수심의 정도는 가늠이 안 될 만큼 클 수밖에 없다. 그 복수심이 이번 전쟁으로만 끝나지는 않을 터. 전쟁 이후라도 미국과 이스라엘을 향한 테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복수심은 그렇게 무섭다. 트럼프와 아즈타바가 같은 레버넌트라고는 하지만 복수심 유무에서 차이가 많다. 복수의 칼날은 대를 이어 시간이 흐른다 하더라도 결코 무뎌지지 않는다.
/정진오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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