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조의 백매화 아닌 홍매화 물결
행운·장수·출세 등 자본주의 세태
지선 눈앞 자신 위한 꿈은 백일몽
공동체 성공 목표땐 韓國夢 될것
지난 주말 서울 봉은사. 초승달 아래 영각 옆 홍매화가 반개(半開)했다. 탐방객 최고의 포토존이다. 묘하다. 본디 선비의 절개와 지조는 백매화가 아니던가. 북풍한설을 견뎌내고 꽃피우는 설중매(雪中梅)가 그렇다. 권력에 굴하지 않는 청렴한 선비의 인격을 나타낸다. 차가운 밤하늘, 달빛 물든 백매화는 그 중 으뜸이라 했다. 바로 빙자옥질(氷姿玉質) 월매(月梅)이다. 세속에 물들지 않은 맑고 고결한 정신을 투영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홍매화를 찾는다. 강렬함과 화려한 희망 때문일까.
홍매화는 첫째로 벽사(僻邪)와 행운을 상징한다. 재앙을 막고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며 집안에 양(陽)의 기운을 불러들인다는 거다. 둘째로 장수와 회춘이다. 붉은 빛은 싱그러운 젊음의 혈색과 같다. 그래서 매화도는 불로장생을 기원하는 효심이다. 셋째로 급제와 당선, 즉 출세운이다. 눈꽃 사이로 붉게 핀 자태에 고난을 이기고 얻은 성취를 이입하는 거다. 돈이 인격의 척도가 된 후기 자본주의 시대이다. 지금은 선비의 나라 조선이 아니다.
붉게 타오르는 홍매화는 아름답다. 하지만 굳이 찾아가 어루만지는 이유는 욕망의 발로이겠다. 한 젊은 정치인이 한밤에 사찰 마당에 홍매화를 심어 구설에 오른 것도 그 연장선 아니겠나. 전국 유명 사찰이 CCTV로 홍매화 개화 상황을 실시간 중계까지 한다. 속세인들의 염원을 외면하기 어렵지 않겠나. 오죽하면 타짜나 심심풀이 고스톱판의 화투장 2월도 홍매화가 아니던가.
바야흐로 전국이 홍매화 물결이다. 서울 봉은사 뿐이겠나. 양산 통도사도 구례 화엄사도 저마다 홍매화 명소임을 뽐낸다. 그래도 순천 선암사의 선암매를 놓칠 수 없다. 수령이 600년 넘은 천연기념물 제488호이다. 백매화와 녹(청)매화 홍매화가 뒤엉켜 흐드러진다.
홍매화는 무우전 옆 투박한 돌담과 어우러져 청춘들의 질박한 춘정이 붉은 물든 듯하다. 대처승의 요람인 태고종의 총본산이어서 그럴까. 홍매화가 지고 4월 하순이면 영산홍과 자산홍으로 붉게 물든다. 빨간 영산홍은 첫사랑, 진분홍 자산홍은 사랑의 즐거움이 꽃말이다.
정작 시인 정호승의 ‘선암사’에는 동백도 홍매화도 영산홍도 자산홍도 없다. 그저 죽은 소나무 뿌리와 풀잎만 등장한다. 그는 읊었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고. 걸어서라도 가서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고.
그래서 그럴까. 많은 이는 꽃보다 ‘뒷간’을 찾아 인증숏을 찍는다. 눈물과 해우소는 정신과 육체의 동시적 배설(排泄), 즉 카타르시스의 원형이겠다. 시인은 동백의 열정도, 홍매화의 성취도, 영산홍과 자산홍의 사랑도 덧없다고 여겼을까.
결국 짜내어 흘리든 힘주어 밀어내든 비움을 말하고 싶었을까. 공수래공수거 인생에서 채움이란 부질없음 아니겠나. 채우려 할수록 삶의 시간이 줄어들고 비울수록 여유가 생긴다. 그럼에도 바가지 차고 베주머니 벌려 바람을 잡아 담으려 한다.
목하 지방선거 바람이 심상치 않다. 정치권은 곳곳 공천잡음과 세력대결로 요란하다. 선거꾼들도 봄날 벌레처럼 준동(蠢動)한다. 이달 하순이면 당선부적 홍매화가 만개하겠지만, 동시에 꿈꾸기 좋은 봄날이 아닌가.
남가군 지방관리(태수)로 등용돼 20년 권력을 즐긴 순우분은 홰나무 아래 꿈 깬다. 남가일몽(南柯一夢)이다. 도사의 도움으로 재상에 오른 노생은 80세까지 우여곡절 권력을 누렸지만 찰나의 단꿈이었다. 한단지몽(邯鄲之夢)이다. 모두가 일장춘몽(一場春夢)이겠다.
대망이든 소망이든 비전은 분명해야 한다. 꿈꾸는 것은 자유이다. 분명한 것은 불의와 부조리에 눈 감으면 개꿈을 꾸다 깨어날 것이다. 눈을 부릅뜨면 마침내 꿈을 이룰 것이다. 자신의 성공이 목표이면 백일몽(白日夢)으로 끝날 것이며, 공동체 성공이 목표라면 AI시대 ‘한국몽(韓國夢)’을 이루는 초석이 되리라.
/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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