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에 완전체 돌아온 BTS ‘왕의 귀환’
케데헌, 골든글로브·그래미·오스카까지
우리가 가진건 오직 사람, 잘 길러내야지
1시간은 너무 짧았다. 시간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광화문 광장 보랏빛 물결 위에 미처 내려앉기도 전이었다. 그림자라도 봤으면 좋겠다며 멀리서 국적을 불문하고 달려온 ‘아미’들이 가장 아쉬웠겠다. 병역 의무를 마치고 4년만에 완전체로 돌아온 BTS의 지난 주말 밤 컴백쇼. 7명의 멤버들은 경복궁 근정문을 출발해 흥례문을 지나고 광화문을 거쳐 월대에 이르는 ‘왕의 길’을 걸어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아리랑’ 변주를 넣은 신곡 ‘바디 투 바디(Body to Body)’로 ‘왕의 귀환’을 알렸다.
라이브 페이지로 현장 상황을 보도하던 뉴욕타임스는 공연의 막이 오르자 “쇼가 시작됐다!”고 전했다. CNN은 미국 슈퍼볼 하프타임 쇼와 런던 올림픽 개·폐막식 등 초대형 글로벌 이벤트를 연출한 해미시 해밀턴이 이번 콘서트의 총연출을 맡았다면서 “BTS의 웅장한 귀환”이라고 표현했다. BBC는 “개선문을 연상시키는 무대”라고 현장을 소개했고, AFP도 공연 시작 소식을 긴급 속보로 타전했다. 넷플릭스는 190개국 3억명의 구독자에게 쇼를 실시간 방송했다. 계정이 없는 나는 이웃한 딸네에서 시청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감독 매기 강이 박수갈채 속에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시상식 단상에 오른 게 불과 열흘 전의 일이다. “저와 닮은 분들이 주인공인 이런 영화가 나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면서 “한국과 전 세계 한국인에게 이 상을 바친다”고 했다. ‘골든(Golden)’으로 주제가상을 받은 이재는 “어린 시절 사람들은 K-팝을 좋아하는 저를 놀렸지만 지금은 모두 우리의 노래를 부른다”면서 “자랑스럽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골든글로브와 그래미에 이어 마침내 오스카까지 품에 안은 벅찬 밤이었다.
앞서 진행된 후보곡 공연부터가 뭉클했다. ‘골든’은 놀이패의 북소리 장단과 판소리꾼의 소리와 함께 시작됐다. “어둠을 밝히려 우리 노래 부르리라/굳건한 이 소리로 이 세상을 고치리라” 판소리 대목이 객석을 휘감을 때 무대 위에선 장삼 걸친 무희들의 춤사위가 휘몰아쳤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에마 스톤, 귀네스 팰트로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K팝의 상징인 응원봉을 흔들어대는 모습이 전 세계로 송출됐다. 맙소사, 내가 방금 뭘 본 거지?
늦은 시간까지 딸과 사위를 괴롭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말했다. 그런데 난 이게 대한민국의 ‘피크’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 우리 아이들은, 우리 손주들은 어떤 세상을 살게 될까. 걔들이 살아갈 날에도 한국이 계속 이렇게 쭉쭉 치고 올라갈 수 있을까 걱정스럽네. ‘피크’니 ‘정점’이니 하는 단어는 요즘 아내가 부쩍 자주 입에 올리는 단어들이다. 지금 괜찮은데, 앞으로도 계속 괜찮은 날들이 이어질지 확신이 안 선다는 얘기다. 아내가 얼마나 두렵고 진지한 마음인지 난 잘 안다.
멀리 나가보면 우리의 ‘사이즈’를 알게 된다. 밖으로 나가보면 우리가 왜 종국에는 무형의 유산만 애써 강조하게 되는지도 알만해진다. 경복궁은 자금성이나 베르사유궁전에 비하면 단조롭고 소박하다. 태백산맥은 알프스에 견주면 얌전하고 수줍은 뒷산 능선이다. 저 넓은 동해조차도 육지로 둘러싸인 바다, 지중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웅장함이나 장대함이나 화려함이나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우리가 세계사의 주역이 된 적이 언제고 있었던가. 작고, 약하고, 적어서, 세계사의 흐름에서도 늘 뒤처지고 소외돼 오지 않았던가. 시야와 의식을 가리는 짙은 안개를 걷어내면 선명하게 드러나는 현실이고, 실상이다.
우리 청년들이 펼치는 멋진 공연을 보면서 가진 건 오직 사람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BTS의 신곡 ‘스윔(Swim)’ 노랫말처럼 어둠을 뚫고 헤엄쳐나가는 사람, 두려움을 받아들이며 물에 뛰어드는 용기를 가진 사람, 그리하여 파도를 일으키는 사람 말이다. ‘골든’이 노래하는,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어둠을 헤치며 빛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말이다. 아이들을 계속 잘 가르치고, 잘 길러내야지. 우리가 그것 말고 뭐 있나. 아내와 그런 얘기를 나누며 늦은 밤을 걸었다.
/이충환 언론학 박사·객원논설위원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경인일보 Copyright ⓒ 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