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사태 속… ‘민중미술 1세대’ 이종구 개인전을 톺아보다

 

‘미국 이라크 침공’… 반복된 참사에 충격

폐허된 도시 답사하며 얻은 습득물 전시

반전 메시지 여전히 유효 “전쟁 멈춰야”

주인을 찾습니다展 ‘바그다드에서의 각종 습득물, 지퍼백’ 2003. /인천아트아카이브 제공
주인을 찾습니다展 ‘바그다드에서의 각종 습득물, 지퍼백’ 2003. /인천아트아카이브 제공

전쟁이 시작된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초등학교에 대한 폭격으로 어린 학생들을 비롯한 민간인 170여 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는, 민중미술 1세대로 불리는 이종구 작가에게도 형언하기 어려운 충격을 줬다.

이종구 작가는 30년 전 여러 작가들과 함께 이란, 요르단, 시리아 등 아랍 지역을 답사하며 현지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모습과 역사에 대해 그린 적이 있다. 이후 이 작가는 2003년 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직후인 그해 여름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방문해 전쟁의 참상을 목도했다.

이 작가가 2003년 11월 4일부터 9일까지 옛 신세계백화점 인천점(현 롯데백화점 인천점) 인천신세계갤러리에서 진행한 개인전 ‘주인을 찾습니다’는 폐허가 된 이라크의 도시와 아랍 지역에서의 경험을 담은 작품들을 선보인 전시였다.

이종구 작가가 2003년 여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만난 사람들을 촬영한 사진과 각종 자료를 꺼내 보이고 있다. 2026.3.27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이종구 작가가 2003년 여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만난 사람들을 촬영한 사진과 각종 자료를 꺼내 보이고 있다. 2026.3.27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최근 인천 부평구 작가의 작업실에서 이 작가를 만나 ‘주인을 찾습니다’ 전시 도록을 함께 보면서 전시 당시 이야기를 들었다. 23년 전 인천에서 열렸던 전시 도록을 다시 꺼낸 이유는 당시 전시가 준 반전(反戰) 메시지가 현재까지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이 작가의 화풍으로 각각 그린 이란 쉬라즈의 베두인족 여성과 아이,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만난 여성이 도록 속에 나란히 서 있다. 작품을 그린 시기도 다르고 이웃한 두 나라의 관계도 좋지 않지만, 전쟁의 피해자인 이들 사이 묘한 연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라크에서 만난 사람 98명의 사진을 이어 붙인 작품도 있다.

이 작가는 “20~30년 전 만났던 이들이 지금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안타깝고 안쓰럽다”며 “당시 실제로 만나 본 사람들은 더없이 친절하고 순박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주인을 찾습니다展 ‘액자 유리 사진’. /인천아트아카이브 제공
주인을 찾습니다展 ‘액자 유리 사진’. /인천아트아카이브 제공

리얼리즘으로 유명한 이 작가인데, 당시 전시에서는 유독 설치 작품이 많았다. 작가가 현지에서 수집한 불에 그을린 사진, 종이 조각, 교과서, 구겨진 알루미늄 캔, 미군 전투식량 포장재 등을 지퍼백에 넣어 그대로 전시한 작품 ‘주인을 찾습니다’가 대표적이다.

이 작가는 “(당시 모습을 보고) 도저히 그림으로 그릴 수 없어 현장에서 습득한 물건들을 직접 공개했다”며 “이러한 물건뿐 아니라 2천500년 넘은 페르시아 문명의 유물들도 파괴된 박물관에서 나뒹굴고 있었는데, 인류의 위대한 문화 유산을 이렇게 막 부숴선 안 된다”고 했다.

이 작가는 “결국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우리가 무언가를 추구하며 사는 것이고, 예술이건 정치건 마찬가지”라며 “‘주인을 찾습니다’란 작품을 언젠가 다시 그곳을 방문해 전시를 열어 주인을 찾아주고 싶었지만, 아직 실현하지 못했다. 전쟁을 당장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구 작가가 2003년 11월 인천신세계갤러리에서 개최했던 ‘주인을 찾습니다’ 전시 도록 표지. 작가가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수집한 물건들을 재구성한 설치 작품이다. /인천아트아카이브 제공
이종구 작가가 2003년 11월 인천신세계갤러리에서 개최했던 ‘주인을 찾습니다’ 전시 도록 표지. 작가가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수집한 물건들을 재구성한 설치 작품이다. /인천아트아카이브 제공

이 작가의 ‘주인을 찾습니다’ 전시 도록은 인천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인천아트아카이브’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볼 수 있다.

이 작가는 산업화 속에서 몰락한 농촌의 실상,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생전 모습 등 사회의 중요한 역사적 흐름과 아픔, 소외된 사람들에 주목하며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내달 1일부터는 경기도 안산 경기도교육청 4.16생명안전교육원에서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아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을 그린 작품을 다시 꺼내 전시할 예정이다. 오는 5월에는 갤러리 학고재에서 최근 수년 동안 집중해 온 ‘불이(不二)’ 시리즈 등 신작으로 개인전을 열기로 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