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각장애인 10명 중 9명은 점자 몰라
연속 기획보도후 점자책 발간 정성 알게돼
올 ‘한글의 해’ 송암의 고향서도 소통·교류를
올해는 인천 강화군 태생인 송암(松庵) 박두성(朴斗星·1888~1963) 선생이 ‘한글점자’를 세상에 내놓은 지 100돌을 맞는 해다.
일제강점기 제생원 맹아부(현 국립서울맹학교) 교사였던 송암은 1926년 11월4일 한글점자를 발표했다. ‘6개의 점’으로 구성되는 한글점자는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을 본떠 ‘훈맹정음(訓盲正音)’이라고도 불린다. 2020년 점자법 개정으로 ‘한글 점자의 날’(11월4일)은 법정기념일로 지정됐다.
경인일보는 2년 전에 독자들에게 연속 기획보도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을 선보였다. 훈맹정음 98돌을 맞은 그해 때마침 정부는 송암의 고향 인천에서 ‘한글 점자의 날’ 공식 기념식을 열었다.
이 기획보도는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한 한글점자의 우수성, 그런 한글점자를 정작 시각장애인들이 배우지 못하거나 일상에서 쓰지 못하는 현실, 한글점자 활성화 정책의 한계점 등을 종합적으로 다뤘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스웨덴과 미국 등 점자 선진국도 취재할 수 있었다. 다량의 점자책을 보유한 스웨덴 스톡홀름 공공도서관과 점자 발행물을 제작·보급하는 정부 기관, 미국 보스턴 점자 출판사 내셔널 브레일 프레스, 퍼킨스 시각장애인 학교 등을 다녀왔다.
우리나라 시각장애인 10명 중 9명은 점자를 읽고 쓰지 못한다. 점자를 배울 기회가 적어서다. 인천만 하더라도 학령기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익힐 수 있는 특수학교는 인천시교육청이 운영하는 인천혜광학교가 유일하다. 중도 성인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는 인천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만 점자를 가르친다. 어려운 가정형편이나 이동권 제약 등으로 점자를 배우다가 포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점자를 익혔다한들 일상에서 활용하기도 어렵다. 제품 포장지에 점자를 넣는 ‘착한’ 기업은 손에 꼽힌다. 해열진통제 등 일부 의약품에 점자 표기를 의무화한 법이 시행된 것도 불과 2024년 7월의 일이다.
당시 한 달여 동안 국내·외 취재를 마친 뒤 사흘에 걸쳐 1면 머리기사와 함께 특집 1개 면을 할애해 200자 원고지 약 100매 분량의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 기획기사 총 12건을 보도했다.
첫 보도를 준비하던 전날, 편집국 데드라인이 임박한 무렵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오늘은 한글 점자의 날입니다’를 점자로 표기한 1면 머리기사 첫 문장을 빼자는 편집기자의 다급한 연락이 왔다. 신문 활자는 크기가 작기 때문에 점자로 구성된 이 문장이 인쇄 후 알아보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점자인 첫 문장은 그래픽 작업으로 크기를 키워 기사 제목 쪽에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 점자 한 문장조차 신문활자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현실이 씁쓸했다.
기획보도는 그로부터 1년 뒤인 지난해 한 권의 점자책으로 제작됐다. 송암점자도서관(미추홀구 소재) 측이 흔쾌히 점역을 도왔다. 종이 선별하기, 점자 크기와 간격 정하기, 사진이나 표를 설명할 방법 찾기 등 점자책 발간 작업은 무엇 하나 간단치 않았다. 취재팀 후배 기자들은 점자책 한 권이 시각장애인의 손끝에 닿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아야 하는지 몸소 깨달았다.
그 과정은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 1년 후…’라는 후속 기획 보도에 담겼다. 취재에 도움을 준 시각장애인들을 비롯해 복지관, 도서관, 출판사 등은 물론 저 멀리 스웨덴과 미국에도 점자책을 보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올해를 ‘한글의 해’로 정했다고 한다. 올해는 세종대왕이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580돌, 조선어연구회가 일제의 한글 말살 정책에 맞서 1926년 ‘가갸날’(한글날)을 선포한 지 100돌, 그리고 송암이 한글점자를 세상에 알린 지 100돌이 되는 해다.
송암의 고향 인천에서도 우리말과 글의 가치를 국제사회와 함께 나누는 소통과 교류의 장이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임승재 인천본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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