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 연심’ 제주 4·3때 가족 이산

살아남고자 日 밀항 그곳서 임종

분단이 만든 역사의 감옥에 갇혀

둘째딸에 약속 못지킨 恨·응어리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연극 ‘해녀 연심’(김민정 작, 나옥희 연출, 3월14~22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은 이산에 관한 작품이다. 제주 해녀 고연심이 제주가 아닌 일본 오사카에서 생을 마감해야만 하는 사연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제주에 사는 둘째 딸 수자에게 연심의 임종 소식이 전해진다. 다섯살 때 홀로 남겨진 수자가 연심의 임종을 지키러 일본 오사카로 떠나면서 연극은 시작한다.

해녀 연심의 이산은 제주 4·3이 그 배경이다. 해방과 분단으로 이어지는 미군정기를 거치면서도 통일에 대한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남한의 5·10 단독선거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제주에서도 강렬하게 터져 나왔다. 47~48년을 지나는 동안 경찰의 발포로 민간인이 사망하고 무장대가 경찰서를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토벌 작전으로 마을이 불탔다. 해변에서부터 중산간에 이르기까지 마을이 초토화되었다.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3만명 이상이 희생되었다. 당시 제주 인구의 10%가 넘었다. 그 한가운데에 연심이 있었다. 연심은 살아남기 위해 일본으로의 밀항을 택했다.

해녀 연심이 걸었던 삶의 경로는 재일조선인 시인 김시종의 경로와 겹쳐 있다. 김시종은 연심과 마찬가지로 4·3 직후 오사카로 밀항했다. 어디 연심과 김시종뿐이겠는가. 김시종의 자서전 ‘조선과 일본에 살다’의 부제인 제주에서 이카이노로가 말해주듯이, 이카이노(오사카시 이쿠노구에 있던 옛 마을 이름)에는 처지가 비슷한 동포가 적지 않았다. 김시종은 자신의 처지를 일본으로 돌려보내진 존재라는 말로 표현했다. 제주에서 오사카로, 조선에서 일본으로 이어진 존재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양쪽 끈에 얽혀, 자신의 존재 공간을 포개고 있는 자’로 살아야 했던 재일조선인의 숙명과도 같은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김시종에게 봄은 제주의 봄이 겹쳐 있다. ‘봄’이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봄은 장례의 계절입니다./소생하는 꽃은 분명히/야산에 검게 피어 있겠죠.//해빙되는 골짜기는 어둡고/밑창의 시체도 까맣게 변해 있을 겁니다./지난해와 같이 검은 죽음일 겁니다.(…)조국의 대지는/끝없는 동포의 피를 두르고/지금, 동면 속에 있습니다.//이 땅에 붉은색 이외의 꽃은 바랄 수 없고/이 땅에 기원의 계절은 필요하지 않습니다./봄은 불꽃처럼 타오르고 진달래가 숨 쉬고 있습니다’.

제주의 봄이 붉은 까닭을 이산하는 장편서사시 ‘한라산’에서, 사망자들은 모두 등 뒤에 총알이 박혔다, 시체 썩는 냄새가 온 섬에 진동했다, 거리에는 붉은 피의 강이 흘렀다고 증언했다. ‘거듭 말하노니/한국현대사 앞에서는 우리는 모두 상주이다./오늘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그 아름다운 제주도의 신혼여행지들은 모두/우리가 묵념해야 할 학살의 장소이다./그곳에 뜬 별들은 여전히 눈부시고/그곳에 핀 유채꽃들은 여전히 아름답다./그러나 그 별들과 꽃들은/모두 칼날을 물고 잠들어 있다’.

김시종은 제주를 떠난 지 49년이 지난 1998년에 제주에 도착했다. 임시 여권으로. 부모의 묘소를 찾기 위해 2003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하지만 연심은 끝내 제주에 도착하지 못했다. 다섯살 수자에게 “열다섯 밤 자면 올거야”라는 말을 남긴 채 일본으로 밀항해야 했던 연심은 끝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 말은 수자에게는 한으로 남는 말이 되었고 연심에게는 응어리로 남는 가시가 되었다.

연심은 남으로도 갈 수 없었고 또한 동시에 북으로도 갈 수 없었다. 연심에게는 세 명의 딸이 있었다. 첫째는 화자요, 둘째는 수자요, 셋째는 기자다. 세 딸이 사는 곳이 모두 다르다. 화자는 북한에 있고, 수자는 남한에 있으며, 기자는 일본에 있다. 연심은 화자를 만나러 갈 수도 없었고 수자를 보러 갈 수도 없었다. 북으로 가면 수자가 다칠까 하는 걱정으로 갈 수 없었고, 제주로 가면 화자가 다칠까 하는 염려로 갈 수 없었다. 연심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분단이 만든 역사의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다시 봄이다. 꽃이 붉다. 제주에도. 이카이노에도.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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