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만 해결되면 행복할 것 같던 시절
이제 먹고 살만한데 자살률 심상치 않아
이 시점서 ‘안전한 삶·복지’ 생각해 봐야
지난 겨울 어느 날, 길눈이 어두운 한 어르신이 안내를 받으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도움을 청하는 민원이겠지 했다. 손에 무엇인가 도톰히 담긴 옛날 편지봉투가 들려있었다. 나중에 알았다. 기부금이었다는 것을. 그 어르신은 “그동안 복지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왔기에 지역사회에 따뜻함을 돌려드리고 싶다. 추운 겨울을 맞는 이웃들이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길 바란다”고 마음을 전했다. 실명 공개를 거부하며 “이름 없이도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요즘처럼 누군가와 사진 찍고 알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그 분을 보며 미루어 짐작하건대, 진정한 행복은 1천만원이라는 돈의 액수가 아니라 그 분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고맙고 감사함보다 우리들에게 무거움으로 다가왔다.
그리 멀지 않은 옛 기억 속에 배고픔만 해결되면 행복할 것 같던 시절이 있었다. 사회는 먹는 것에 집중했고, 부모들은 자식 때문에 산다 했다. 그래도 좋았다. 같은 터전에서 같이 먹고, 같은 생각을 이야기하고, 같은 노래를 부르고, 같은 아픔을 나누는 이웃이 있었다. 일을 마친 저녁이면 별빛이 내리는 뜰안 멍석에 이웃과 둘러앉아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일을 이야기했다. 별똥별이 떨어질세라 소원을 공유했다. 아이들은 달빛을 등불삼아 술래잡기를 했다. 어울림이 있었다. 마음 속에는 저마다 별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유일한 행복이었다.
그것을 깬 것은 전기라는 문명의 이기였다. 서로는 단절됐고 우리들의 문화는 사라졌다. ‘로가’ 합창 소리가 새벽을 깨우고 어둠을 알렸다. ‘로가’는 인부들이 전봇대를 들고 옮기며 함께 힘을 모으기 위해 소리 내던 ‘앞으로가’의 줄임 합창소리였다. 그렇게 그 분들의 땀과 노력으로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다. 등잔불이 백열등으로 바뀌는 순간 세상이 바뀌었다. 어른들의 삶의 공간, 아이들의 놀이 공간이 사라졌다. 모두가 흑백텔레비전 앞으로 모였다. 사람들은 마을에 텔레비전이 있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때부터 모두가 같을 거라던 생각이 변했다. 빈부격차가 전기 불빛에 드러났다. 자꾸 비교가 된다. 행복하지 않다. 그렇게 한해 한해 쌓여만 갔다.
이제는 먹고 살만한데, 자살률이 심상치 않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늦어지는 결혼,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한다. 돌볼 가족이 없다. 공부를 마친 아이들은 집에서 놀고 있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땀 흘리던 시절에도 꿈과 희망이 있었다. 사회복지 탄생 자체가 구호와 배급에서 시작되어 생존을 위한 분배의 행정이 고착화돼 왔다. 필연의 법칙을 인식할 때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한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필연의 법칙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세르비아 속담에 ‘정치인은 전쟁을 시작하고, 부자는 무기를 대고, 가난한 사람은 자녀를 제공한다. 전쟁이 끝나면 정치인들은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하고, 부자들은 생필품의 가격을 올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자녀의 무덤을 찾아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사는데 반드시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믿음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제 물질적인 것보다도 영적인 것에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지금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구성원들이 함께 존중하고 신뢰하며 협력하여 공유하는 사회가치 실천이 절실하다. 인간의 모든 능력을 대체한다는 AGI(범용 인공지능)의 존재로 인해 앞을 가늠하기 힘든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학습이 가능한 인공지능의 통제 하에 우리가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눈치 봐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가 변하고 시스템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행복한 삶, 복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진정한 복지, 행복한 삶은 모든 이들의 안전한 삶을 보장함으로써 행복한 사람이 많은 사회, 행복한 사람들이 행복을 전하는 사회가 아닌가 싶다.
/박희열 안성종합사회복지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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