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요망한 도적을 소탕하여 종사를 편안하게 하겠으니 그대들은 마땅히 약속을 같이 하라.”
1453년 계유정난을 일으킨 수양대군이 함께 거사를 도모한 이들에게 말했다. 요망한 도적은 김종서다. 선왕의 유지를 받들어 어린 왕의 후원자가 됐다. 고작 열두살 밖에 되지 않은 왕을 보필하니 권력의 쏠림은 김종서를 비롯한 신하들에게 향했다. 강력한 왕권이 국가의 근간이라 여긴 수양대군 입장에선 세상을 바꿀 명분이 생긴 셈이다. ‘계유년에 어려운 일을 평정했다’는 의미를 담은 것도 그 명분을 내세우기 위함이다.
거기까지였다면, 그의 명분은 도리에 맞는 행위였다 평가받았을 것이다. 어린 조카이자 힘없는 왕의 든든한 후견세력으로 왕이 성장할 때까지 왕권을 지켜주는 역할로 남았다면 말이다. 그랬다면 그가 내세운 명분은 두고두고 칭송받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왕위를 찬탈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모든 행위는 명분없음으로 종결됐다. 572년이 지난 지금도 그가 묻힌 남양주 광릉이 ‘별점테러’를 당하며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사욕으로 수양대군은 명분을 잃었지만, 애초에 명분도 없이 사리사욕으로 일으킨 ‘난(亂)’들로 인해 요즘 뉴노멀의 시대를 살고 있다.
재작년 겨울밤, 교과서와 외신으로 접했던 ‘내란’을 목도했다. 한겨울밤의 꿈에 그쳐, 체감으론 블랙코미디 영화를 본 것 같은 기분이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지금까지 이룬 우리의 세상을 뒤흔드는 가슴이 서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디 이뿐일까.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이란의 전쟁은 현실적 공포다. 명분이 불명확한 전쟁은 오히려 끝맺을 수 없음을 매일 뉴스로 확인하며 우리의 처지를 걱정한다.
가깝게는 오는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도 명분 없는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편의에 따라 선거의 룰을 바꾸는 일이 횡행한데 부끄러운 줄 모른다. 역사에서 보듯 결국 모든 후과는 명분 없는 이들에게 돌아갈 테지만 이것조차 모른다. 뉴노멀의 시대다.
/공지영 지역사회부(오산) 차장 jy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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