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균의 우국충정 ‘갑신정변’
日, 결정적 시점서 발 빼 실패
시치미 떼는 능란함에 분노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 서글퍼
엊그제, 원고를 마무리하고 OK를 냈다. 책쟁이들 말로 ‘손을 털었다.’ 이제 책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물론 인쇄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여전히 불안하지만 그래도 일단 내 손을 떠났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 책은 만드는 데 7개월이 걸렸다. 보통 책이 출간되는데 2~3개월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적잖은 시간이 든 셈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원고가 잘 읽혀서 재미있게 일할 수 있었다. 예전에 두꺼운 책을 만들 때 느꼈던 그 막막함이 별로 없었다. 그때 나는 자주 이런 생각을 했다. ‘두꺼운 책은 우리 같은 1인 출판사가 할 일이 아니야. 이제는 페이지가 없는 가벼운 책을 만들어야지.’ 그러나 그건 생각일 뿐, 좋은 원고를 만나면 또 마음이 바뀐다.
이번에도 학술서 같은 역사서이다. 나는 당연히 독자들이 흥미를 가질 교양서라는 생각으로 만들었는데 디자이너는 “이런 책은 대학출판부에서 내야 하는데.”하는 것이었다. 열이면 열 모두가 팔리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럴 때 나는 “지금 시대에는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책이 안 팔려요.”라고 응수한다. 20년 이상 책을 만들면서 터득한 점이 있다면 시장에서 사라지지 않는 책을 만드는 게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5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찾는 책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런 책이 모여야 출판사도 힘이 생긴다.
어쨌든 조선시대 후기, 즉 구한말의 역사서를 연속으로 내고 있는데 이번에 만든 책은 ‘갑신정변’에 관한 회고록이다. 나는 갑신정변이라면 ‘김옥균과 3일천하’를 떠올린다. 학교에서 그 이상을 배운 기억도 없다. 그런데 이 책을 만들면서 내 역사의 빈 페이지가 제대로 채워졌다. 정변(政變), 요즘 말로 쿠데타란 얼마나 많은 희생을 담보하는 것인가? 책은 당시 정변과 관련한 조선과 일본, 중국, 미국의 관련자들 기록을 통해 피로 얼룩진 현장을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
책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여러 곳 있다. 역자(신복룡)는 서문에서 “갑신정변은 친위 쿠데타였다”라고 규정한다. 그 말에 2년 전 윤석열 전 대통령이 일으킨 친위 쿠데타가 쑥 들어왔다. 차이가 있다면 윤석열은 자신이 대통령이었음에도 쿠데타를 시도한 것이고 김옥균은 고종의 최측근이면서 왕을 속이고 거사를 모의했다는 점이다. 차이점은 김옥균의 거사는 위기 앞에 있는 나라를 걱정한 우국충정의 발로였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갑신정변’이 기려지는 이면에는 그런 진심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김옥균은 사대당을 척결하려고 했다. 사대당은 곧 민비였다. 기세등등한 민비 앞에서 고종조차 어찌할 수 없었다. 민비의 행태를 보노라면 지난 몇 년간 우리를 어지럽힌 김건희의 국정농단이 더욱 선명하게 그려진다.
갑신정변이 실패한 것은 일본이 결정적인 시점에서 발을 뺐기 때문이다. 김옥균은 스승 후쿠자와 유키치의 조언에 따라 거사를 결심했다. 후쿠자와는 다케조에라는 인물을 조선에 파견해 김옥균을 지원하도록 했는데 결국 상황이 불리해지자 배신했다. 그런 다음 일본정부는 이노우에 가오루를 전권대사로 파견해 일본은 갑신정변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고 시치미를 뗀다. 조선을 상대하는 그의 능란함을 보고 있노라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다 못해 당시 조선인 누가 그를 감당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서글퍼진다.
갑신정변 때 죽거나 다친 일본인들은 40명이라고 한다. 책에는 그들의 이름과 고향까지 상세히 들어있다. 그렇다면 조선인은 얼마나 죽었을까? 일본대사관에 몰려가 돌을 던지며 항의하던 조선인들의 행동은 누가 기려주었을까?
미국대사관의 후트, 후크가 남긴 자료는 가치가 높다. 조선의 당시 정황을 상세히 그린 것은 물론, 미국이 대외정책에서 일본편을 드는 역사가 이런 곳에서 비롯됐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한다. 막 조선에 건너온 의사 알렌이 민영익을 치료하는 과정은 여러 곳에서 상세하게 나타난다.
김옥균이 일본을 끌어들인 대가는 처절했다. 청일전쟁에서 러일전쟁으로 이어지고 결국 조선이 병탄되기에 이른 것이다.
/김예옥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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