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에너지 위기·환율상승 등
국제정세 악화 ‘국내 영향’ 불구
다수여당 독주 등 본연 기능 상실
포용·협력 전환… 역할 회복 시급
국제정세가 심상치 않다. 중동전쟁발 에너지파동으로 기름값이 치솟아 경제를 어렵게 하는 것도 문제려니와 환율상승과 미국의 대미투자 압박 등 산적한 여건은 우리를 더욱 절망스럽게 하고 있다. 국내상황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갖가지 갈등으로 국론은 갈라져 있고 경제는 최악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정치다. 오로지 정치만이 여건을 타파하고 국민을 평안케 할 수 있다.
정치(政治)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케 하고 국민상호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 잡는 것이다. 정당(政黨)은 무엇인가? 정당은 정치적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결사체다. 즉, 정치인 개인이 홀로 의견을 표출하는데 따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결성하는 것이다. 아울러 국민 개개인이 모두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없기에 정치인을 선출하여 권한을 위임하는데 이때 위임받은 사람을 정치인이라 부르고 이러한 제도를 대의민주주의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정치 현실은 어려운 국민의 삶 만큼이나 최악이라 할 것이다. 정치가 아예 없어진 것이다. 되레 정치가 국민을 더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 이대로는 안된다. 민주주의 전당인 국회를 보라! 절대다수인 여당이 마치 국민으로부터 모든 권한을 위임받은양 소수야당을 압살하고 민주주의 기본질서인 3권(입·사·행)을 유린하고 있는 것은 결코 국민을 위한 정치라 할 수 없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우정치(衆愚政治)’가 민주주의를 망치는 원인이라 했다. 어리석은 다중의 무리가 다수결의 원칙을 악용하는 것은 폭거라고 규정했다. 야당의 목소리도 담아내는 포용의 정치가 필요하다. 야당을 찍어준 국민들도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존중과 배려가 있어야 마땅하다.
내란으로 시작된 국민 갈라치기는 이제 마무리하고 국론통일에 정치권이 매진해야 한다. 역사에 맡길 부분은 역사에 맡기고 새로운 정치, 국민을 위한 정치로 전환을 꾀해야 한다. 한쪽에선 “내란!”, 또다른 한쪽에선 “전과자 대통령! 재판재개!”. 이제는 안된다.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자는 국민운동에 국민이 잘살아보자로 화답한 것이 ‘새마을 운동’이다. 박정희의 외침에 동참하여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오늘날 산업화를 이야기할때 박 대통령을 기억한다. 김대중·김영삼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민주화 운동’도 다를 바 없다. 억압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로 가자는 외침에 국민이 화답하여 오늘날 민주주의 대한민국이 탄생했다.
이렇듯 국민통합을 위한 정치권의 노력이 있을 때 성공한 정치, 정권이 된다. 집권여당의 책임은 무한한 것이며, 잘한 것은 당장에 빛이 나지 않는다. 다수당이 변해야 한다. 다수당이 따스한 손을 내밀어 소수야당의 차가운 손을 잡아줄 때 정치는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변한 정치는 경제, 안보 등의 모든 난관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며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남북으로 분단된 대한민국, 동서로 갈라진 지역갈등, 좌우로 갈라진 이념갈등, 가진자 없는자로 갈라진 빈부갈등 등 갈라지고 찢어진 갈등의 실타래를 풀어 ‘국민통합의 시대’를 열어야 경제가 살아난다. 정치만이 할 수 있다. 그래서 정치가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허점을 칮아내서 상처를 주는 정치는 지양하고, 상대의 좋은 정책은 배려해주는 상생의 정치를 보고 싶다. 개인을 위한 정치, 특정인을 위한 붕당(朋黨)정치는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다. 정치는 국민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정당은 그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치솟는 물가, 자고나면 오르는 기름값…. 피곤한 국민은 그 책임을 정치권에 묻는다.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오늘도, 내일도, 정치는 여전히 싸움질만 한다.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정치가 이래서는 안된다.
하루 속히 정치를 복원하여 국민의 삶을 영화롭게 하여야 한다. 저력이 있는 대한민국 정치는 반드시 해낼 것으로 기대한다.
/정홍전 바르게살기협의회 이천시 호법면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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