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빈 최씨 닮았던 영조 ‘연잉군’
재위기간 어머니 묘 232회 찾아
무덤 격상… 사무치게 그리워해
한평생 누비옷 기피 ‘효심 지극’
조선 왕 중 가장 오래 산 왕은 영조다. 재위 기간도 가장 길다. 건강하게 82세를 사는 건 복이다. 또한 나라의 리더로서 52년을 통치하는 건 하늘이 내린 복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런데 1천600만명 넘게 관람한 ‘왕과 사는 남자’ 단종은 조선 왕 중 가장 짧게 산 왕이었다. 상왕이 된 단종은 17살에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어 노산군으로 죽었다. 노산군이 죽은 후 241년이 지나 영조의 아버지인 숙종은 그를 노산군에서 단종으로, 그의 묘를 노산군 묘에서 장릉(莊陵)으로 묘호와 능호를 복위시켰다. 그는 왜 단종을 복위시켰을까?
숙종은 왕권 정통성을 강화하며 역사적 평가도 하나씩 재정립하였다. 단종 복위 1년 후 1699년(숙종 25) 숙종은 연잉군을 낳은 후궁을 귀인에서 정1품 숙빈(淑嬪)으로 승급시켰다.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숙빈 최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영조의 생모이며, 숙종의 후궁이 숙빈이다. 가장 겸손하고 바른 성품으로 살다 연잉군 사저에서 4년을 요양한 후 49세에 죽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아들이 왕위에 오른 걸 모른 채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3살에 아버지가 죽고, 4살에 어머니도 세상을 떠난 후 7살에 궁에 가장 낮은 하녀로 입궁하였다.
그녀는 물을 긷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바느질 하는 등의 허드렛일을 하며 궁에서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무수리 출신에서 왕의 후궁을 거쳐 왕의 어머니까지 되었다. 그녀의 성품은 죽는 날까지 변하지 않았다. 어머니를 닮은 아들 연잉군은 왕자 시절 어머니 무덤에 막을 짓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보냈다. 서오릉에 있는 숙종과 왕비들 무덤에 비하면 아주 조촐한 후궁의 묘였다. 효심이 지극한 영조는 왕이 된 후 어머니 숙빈 최씨 신분을 상승시키려고 하였다. 마침내 영조 즉위 후 어머니 무덤을 소령묘, 사당을 육상묘로 격을 높였다.
1753년(영조 29) 왕을 낳은 후궁의 사당과 무덤도 궁과 원으로 하는 궁원제(宮園制)도 만든다. 백악산 기슭 경복궁 위에 육상궁(毓祥宮)을 두고, 고령산 기슭에 소령원(昭寧園)을 다시 조성하였다. 묘비도 직접 지어 세웠다. 영조는 진정한 효자였다. 아니 평생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살았다. 왕가에서 사친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하고 죽어서 어머니를 사무치게 모셨다. 파주 소령원에 있는 신도비에 의하면 ‘신중하고 단정하며 기쁨과 노여움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았고, 항상 공경하고 조심하였다’라고 어머니를 그렸다. 가슴 아픈 비문이다.
왕자였던 연잉군 시절 어머니의 어린 시절 힘들었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후 왕이 된 영조는 어머니 생각하며 한평생 누비옷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 가슴이 시려온다. 또한 시호 ‘화경(和敬)’을 올린 후 영조는 “내가 이제는 한이 없다”며 오랜 숙원을 완성하였다.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 무덤 소령원이 파주 광탄면 영장리에 있다. 그러나 숙빈 최씨 신위는 종묘가 아닌 육상궁에 모셔져 있다. 백악산 기슭 청와대 옆 칠궁은 육상궁이 그 주인이다. 이곳에 영조는 52년 재위 기간 중 232회 방문하였다. 해마다 봄·여름·가을·겨울 어머니를 그리워하였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어머니는 자식들의 힘이 되어 준다. 꽃 피는 봄날 ‘소령원과 육상궁’을 가야 할 이유다.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경인일보 Copyright ⓒ 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