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나와 내 소설을 보호해줘

색깔·무늬도 없이 밋밋하지만

따스하게 내삶의 스웨터와 비슷

올 풀리지 않게 마무리 잘해야

김성중 소설가
김성중 소설가

3월 내내 바빴다. 새로 맡은 강의가 있어 준비와 적응에 시간이 걸렸고 장편과 단편 둘 다 작업 중인 상태였다. 심사를 맡아 읽고 토론해야 할 원고도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그 결과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각각 다른 곳에 이동해서 일을 해야 했다.

주말 특근이라. 직장인이 아닌 다음부터 이런 시간을 보낸 적이 거의 없다. 주말에도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가서 일하고, 그 다음날도 일하다가 월요일을 맞이하는 리듬이 오랜만이어서 저절로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이른바 ‘사회생활’이란 것을 하던 시기에, 그러니까 내가 작은 잡지사 기자였을 때는 어땠었지? 놀랍게도 주말에 사무실에 나가는 걸 좋아했다. 건물은 텅 비어 조용하고, 파티션 안에 나 혼자 담겨 있고, 그 속에서 맥반석 계란도 까먹고 샌드위치도 먹으면서 공적인 공간을 사적으로 점유하는 기분을 누렸던 것 같다. 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기사 한 줄 쓰다가, 일어나서 마구 춤추고 과자를 와그작와그작 소리 나게 먹고, 아무도 보지 않았지만 사무실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에 흠칫 놀라 다시 얌전히 앉아서 나머지 부분을 써 나갔다. 그러다 밤이 되면 옆 건물의 불 켜진 창문을 보면서 괜한 연대감을 느끼기도 했다.

괜한 연대감을 느낀 순간은 또 있다. 그로부터 몇 년 지나 등단을 하고 겁에 질려 있을 때였다. 다른 작가 두 명과 함께 작업실로 쓸 옥탑방을 빌려 놓았다. 직장 대신 일거리 삼아 어떤 책들을 만들기로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 책들은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그곳에서 태어난 건 작가인 나였고 거기서 만들어진 것은 내 초창기 소설들이다. 셋이 쓰던 작업실을 혼자 반년 더 쓰기로 하고 두려움 속에서 두 번째, 세 번째 단편들을 써 나갔다. 그 방에서 등단했으니 왠지 그 방을 떠나면 안 될 것 같은 이상한 믿음에, 방세라도 내야 더 열심히 쓸 것 같은 압박감을 계산하고 내린 결정인데 집에서 독립한 최초의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아침마다 옥탑방 마당으로 나와 햇살을 쫙 받으면서 체조를 했다. 옥탑방 입주자의 특권이라 생각하며 아침볕을 받고 있으면 다른 옥상에서 나와 같이 체조를 하는 사람을 목격할 때가 있다. 그러면 알 수 없는 연대감이 진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일을 핑계로 밤을 새는 유구한 전통은 작가가 된 후에도 이어졌다. 일거리 앞에서 밤을 샐 각오부터 하는 품새가 벼락치기 하는 수험생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솔직히 나만 그런가? 예나 지금이나 할 일을 미루면서 책상에서 빈둥거리는 순간은 금단의 열매처럼 달콤한 법이다. 이 초조한 쾌락에는 죄책감이 섞여 있어 배가 되는 것 같다. 좀 더 많은 경험을 통과하고 나서야 그런 빈둥거림 마저 일에 속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기에 섞인 비계처럼 그 시간도 노동에서 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인공지능도 기계도 아니니까.

그때는 일이 많은 것이 자랑스러웠다. 일에 쫓기는 내 모습에 도취되어 있던 것 같다. 내가 많은 일을 해치우는 중요한 존재라는 착각을 하도록 가스라이팅 하는 구조가 현대사회에서 무의식처럼 작동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제는 일이 많은 것이 자랑스럽지 않다. 오히려 바쁘게 사는 건 품위가 없는 삶이라는 진실을 체감하고 있다. 지하철 안에서도 앉자마자 이어플러그를 끼고, 눈에 인공눈물을 넣고, 손에는 필기구를 잡고, 프린트물을 꺼내며 부스럭거리고 있으니 부산스럽기 짝이 없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아스팔트를 달려가는 고물차가 된 기분이랄까? 그러나 어찌됐든 일은 하나씩 끝나간다.

새 강의실을 찾아 계단을 오르면서 문득 ‘대학을 오래 다니고 있구나,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도 꽤 오래 대학생활을 하고 있네’라는 혼잣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대학원에 가고 싶었지만 취업을 할 수밖에 없던 나는 야근과 퇴사와 취업의 회전문을 몇 바퀴 돌아 다시 강의실로 돌아왔다. 등록금도 내지 않으면서 이렇게 오래 학교를 다니고 있으니 대단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평직으로 짠 직물처럼, 일은 나와 내 소설을 보호해준다. 색깔도 무늬도 없이 밋밋하지만 그래도 따스하게 내 삶을 보호해줄 스웨터와 비슷한 것이다. 올이 풀리지 않게 마무리도 잘 해야겠다.

/김성중 소설가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