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철 KB국민은행 선임부장
신광철 KB국민은행 선임부장

평생 ‘성실’이라는 두 글자만 믿고 살아온 이들이 은행창구에서 힘겹게 일군 예금을 깨고 증권시장으로 뛰어들고 있다. 금융 현장에서 필자의 눈에 비친 이 광경은 단순한 자산 이동이 아니라,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의 ‘생존의 비명’에 가깝다. 수십년간 꼬박꼬박 적금을 부으며 자녀를 키우고 집 한 채 마련하는 것을 과업으로 여겼던 우리네 부모님 세대에게 작금의 자본시장은 무자비하기 짝이 없다.

초저금리와 살인적인 물가 상승은 예금 통장의 숫자를 박제로 만들었다. 반도체 열풍과 AI 혁명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는 저축하는 사람을 순식간에 ‘시대의 낙오자’로 낙인찍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그래프가 천장을 뚫을 기세로 치솟을 때, 은퇴자들은 소외감과 박탈감을 넘어 깊은 자괴감에 빠진다. ‘남들 다 버는 돈, 나만 못 벌어서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 건 아닐까’하는 공포가 그들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소외감이 은퇴자들을 투자가 아닌 ‘투기’로 내몰며 투신(投身)을 강요한다는 사실이다. 평생 안전한 길만 걸어온 이들이 생전 처음 보는 ‘변동성’이라는 괴물 앞에 무방비로 노출될 때 그 결과는 참혹하다. 노후를 위해 남겨둔 최후의 보루인 퇴직금과 연금을 헐어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일 테지만, 시장은 결코 자비롭지 않다.

실제로 영업 현장에서 목격하는 사례들은 처참하다. 평생 공직에 몸담으며 모은 돈을 소위 ‘주식 리딩방’ 사기에 털리고, 자괴감에 대인기피증을 겪는 은퇴자가 부지기수다. ‘내가 평생 무엇을 했나’라는 자기비하는 무기력증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한탕을 노리는 무리한 베팅으로 회귀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도파민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정보력과 체력이 부족한 은퇴세대는 거대 자본의 ‘불쏘시개’로 전락하고 만다.

이것을 개인의 탐욕 탓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노후의 생존을 각자도생 시장 논리에 내맡긴 국가와 사회 시스템의 명백한 직무유기이기 때문이다. 이제 숫자의 광기에서 벗어나 ‘마인드풀(Mindful) 투자’를 넘어선 사회적 안전망의 재구성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은퇴 세대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화려한 수익률이 아니라 ‘삶의 존엄’을 지켜줄 안정적인 현금 흐름이다.

마인드풀 투자는 단순한 마음 수양이 아니다. 데이터에 근거해 인간의 뇌가 공포와 탐욕 앞에서 합리적일 수 없음을 인정하는 ‘시스템적 절제’를 의미한다. 스스로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만 자산을 운용하는 ‘자기 통제권’을 회복해야만 거친 시장의 파도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동시에 사회적 대안이 병행되어야 한다. 은퇴자들이 조급함에 눈이 멀지 않도록 국가가 공적 연금의 실효성을 높이고, 시니어 특화 자산 관리 서비스를 공적 영역에서 제공해야 한다. 은퇴자들이 배움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며 자산 관리의 스트레스를 분산하는 시스템이 정착되어야 한다. 은퇴자를 단순히 ‘잠재적 투자자’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지혜를 사회적으로 선순환시키는 구조를 만들어야 주식 전광판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비극을 멈출 수 있다.

투자시장의 숫자는 결코 인간의 가치를 대변할 수 없으며 숫자의 노예가 아닌 삶의 주인으로 남아야 한다. 금융 현장에서 수많은 고객과 사례를 보며 확신한 것은, 세상 그 어떤 정교한 알고리즘도 한 사람의 평생에 걸친 땀방울과 헌신의 가치를 온전히 계산해 낼 수는 없다는 점이다. 은퇴세대는 숫자에 매몰되어 자괴감에 빠질 이유가 전혀 없다.

이제 ‘더 빨리’를 외치는 도파민의 질주를 멈추고 ‘어떻게 함께 존엄하게 살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은퇴자들이 조급함을 내려놓고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을 때, 자본주의는 야만을 벗고 따뜻한 얼굴을 가질 수 있다. 금융인들 역시 기술과 경험이 자본의 확장을 넘어 공동체의 안녕을 지키는 방패가 되도록 역할을 다해야 한다. 부모님 세대의 평온한 노후는 곧 우리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한 미래이자, 자녀 세대의 내일이기 때문이다.

/신광철 KB국민은행 선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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