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넷, 경기도내 4개 업소 공표

조사 결과 이동판매차 ‘혼유 사고’

경위 무관하게 용어 하나로 처리

취지 무색, 소비자 혼란·업주 피해

공사 “정부 지시 필요… 조율 해야”

지난 13일 정오께 찾은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의 한 주유소에서 해당 주유소 관계자 남모(63)씨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한국석유관리원 검사 결과 통보 문서를 펼쳐 보이고 있다. 2026.4.13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지난 13일 정오께 찾은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의 한 주유소에서 해당 주유소 관계자 남모(63)씨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한국석유관리원 검사 결과 통보 문서를 펼쳐 보이고 있다. 2026.4.13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가짜석유라니…. 너무 억울합니다.”

최근 경기도 내 주유소 4곳이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가짜석유 취급업소’로 공표됐지만 경인일보가 관할 지자체를 모두 조사해보니 불량 석유를 제조·유통한 사안이 아닌 이동판매차량 배달 과정의 혼유 사고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낙인이 찍히자 소비자들은 불안해하고 업주들은 손님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상황까지 빚어졌는데 위반 경위와 무관하게 ‘가짜석유’라는 행정·법률 용어 하나로 일괄 처리되는 구조인 만큼 공표 방식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3일 정오께 찾은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의 A주유소. 대형 트레일러들이 잇따라 들어서며 주유기 앞에 섰다. 오피넷에 ‘가짜석유제품 제조·판매 금지 위반’으로 공표된 곳이 어떻게 버젓이 영업 중인 걸까. 사무실로 들어서자 이곳 관계자 남모(63)씨는 ‘가짜석유가 아닌 호스 잔량 혼입으로 인한 억울한 처분’이라는 내용이 담긴 의견서 한 장을 내밀었다.

적발된 경위는 이랬다. 지난 1월 21일 인근 공사 현장 굴삭기 3대에 경유 2천100ℓ가량을 이동판매차량으로 공급했는데, 전날 등유 배달에 쓴 노즐과 호스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내부에 남아 있던 등유 일부가 경유에 섞여 들어간 것이다.

이후 한국석유관리원이 현장 조사에 나섰지만 주유소 탱크와 이동판매차량에 대한 품질검사는 모두 ‘적합’ 판정이 나왔고 부적합 판정을 내린 건 공급을 받은 현장 굴삭기에서 채취한 시료뿐이었다. 용인시청도 이런 경위를 참작해 사업정지 3개월 대신 과징금으로 처분을 갈음했다.

이 주유소는 인근 용인 SK하이닉스 공사 현장을 담당하는 SK에코플랜트와 주거래 관계인데 현장에 드나드는 협력사들까지 포함하면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해 거래가 끊기면 사실상 영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욱이 SK에코플랜트 측이 공표 이후 거래 재검토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남씨는 “주유소 문 닫으라는 얘기나 다름없다”고 했다. 그는 현재 행정소송을 준비 중이다.

남씨는 “이번에 공시된 주유소들 중에 저 같은 경우가 또 있을 수 있다”며 “고의로 가짜석유를 판 것인지, 혼유 실수인지 구분해서 처리해야 하는 게 행정이 해야 할 일 아닌가”라고 토로했다.

지난 13일 정오께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의 한 주유소에서 대형 덤프트럭이 주유기 앞에 서 주유 중이다. 이 주유소는 최근 오피넷에 ‘가짜석유제품 제조·판매 금지 위반’ 업소로 공표됐지만, 실제로는 배달 직원이 전날 등유 배달에 쓴 호스를 그대로 사용해 경유에 등유 일부가 섞인 혼유 실수로 적발된 사안으로, 주유소 측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행정소송을 준비 중이다. 2026.4.13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지난 13일 정오께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의 한 주유소에서 대형 덤프트럭이 주유기 앞에 서 주유 중이다. 이 주유소는 최근 오피넷에 ‘가짜석유제품 제조·판매 금지 위반’ 업소로 공표됐지만, 실제로는 배달 직원이 전날 등유 배달에 쓴 호스를 그대로 사용해 경유에 등유 일부가 섞인 혼유 실수로 적발된 사안으로, 주유소 측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행정소송을 준비 중이다. 2026.4.13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4곳 모두 ‘혼유 실수’… ‘불법 제조’는 없었다

취재 결과는 남씨의 우려대로였다. 14일 찾은 화성시 양감면의 한 주유소 역시 이동판매차량에서 채취한 시료에서 경유에 등유 일부가 혼합된 것이 확인돼 적발됐다. 화성시 관계자는 “업주가 혼유로 인한 것이라는 의견을 제출했고, 법상 2분의 1 이내에서 감경이 가능해 청문 절차를 거쳐 과징금을 낮춰줬다”고 말했다.

과천시 과천동의 한 주유소는 이동판매차량 내 경유와 등유를 나눠 싣는 격벽이 오작동하면서 두 유종이 섞였고 이를 한국석유관리원이 적발해 과징금 5천만원으로 조치됐다. 과천시 관계자는 “차량 실수로 인한 혼유 사안으로, 업주 사정을 참작해 감경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의 또 다른 주유소도 A주유소와 동일한 이동판매차량 혼유 사안으로 적발돼 과징금 처분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단속에서 처분까지… 소비자는 알 수 없는 과정

한국석유관리원은 별도 신고 없이도 수시로 전국 주유소와 이동판매차량을 돌며 현장에서 직접 시료를 채취해 품질 검사를 실시한다. 검사 결과 기준치를 벗어난 혼합이 확인되면 관할 지자체에 통보하고 지자체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제29조 제1항 제1호에 따라 행정처분 절차에 들어간다.

처분 전에는 업주에게 사전통지를 하고 의견 제출 기회를 준다. 업주가 소명 자료와 함께 의견서를 내면 지자체가 이를 검토해 사업정지 대신 과징금으로 처분을 조정할 수 있다. 화성시의 사례처럼 청문 절차를 거쳐 당사자가 직접 소명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 적발된 4개 업소가 모두 사업정지 대신 과징금으로 마무리된 것도 이 같은 절차를 통해 경위가 참작된 결과였다.

그러나 이런 구체적인 내용은 오피넷을 통해 확인할 수 없다. 지자체가 입력한 위반 법령 조항이 그대로 올라갈 뿐이다. 네 곳 모두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제29조 제1항 제1호(가짜석유제품 제조·수입·저장·운송·보관 또는 판매 금지)와 관련해 오피넷에 ‘가짜석유제품 제조 등의 금지의무 위반’이라고만 나온다. 위반 경위를 알 길 없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불량 석유를 고의로 제조·판매한 업소로 읽힐 수밖에 없다.

한국석유관리원수도권남부본부가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의 한 주유소에 발송한 석유제품 품질 및 유통검사 결과 통보문. 최근 오피넷에 가짜석유 위반 업소로 공표된 이 주유소에 대한 검사 결과인데, 이동판매차량 앞칸·뒷칸·주유기 등 품질검사 항목에서 모두 ‘품질적합’ 판정을 받았다. 위반 판정은 등유 배달에 쓴 호스를 그대로 사용해 경유에 등유 일부가 섞여 공급된 건설기기(굴삭기) 연료에 한해서만 내려졌다. 2026.4.13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한국석유관리원수도권남부본부가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의 한 주유소에 발송한 석유제품 품질 및 유통검사 결과 통보문. 최근 오피넷에 가짜석유 위반 업소로 공표된 이 주유소에 대한 검사 결과인데, 이동판매차량 앞칸·뒷칸·주유기 등 품질검사 항목에서 모두 ‘품질적합’ 판정을 받았다. 위반 판정은 등유 배달에 쓴 호스를 그대로 사용해 경유에 등유 일부가 섞여 공급된 건설기기(굴삭기) 연료에 한해서만 내려졌다. 2026.4.13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고유가 시대 ‘가짜석유’ 낙인… 업주들 손님 잃을까 전전긍긍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 여파로 호르무즈 해협이 한 달 넘게 막히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정부 범부처 합동 점검단은 가짜석유·혼합판매 등 불공정 거래 행위 집중 단속에 나선 상태다. 가짜석유는 분명 차량 엔진을 망가뜨리는 등 피해를 초래하는 불법 행위지만, 혼유 실수까지 같은 문구로 묶이면서 소비자 혼란과 업주 피해는 동시에 커지고 있다.

실제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 카페에는 ‘우리 동네 OO주유소 가짜석유로 오피넷에 떴다’, ‘차에 이상 생기면 보상은 누가 해주나’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만약 진짜 ‘가짜’ 석유를 주유한 차량이라면 문제는 단시간에 드러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가짜 석유를 주유하면 엔진이 망가지는 건 물론이고 운행 도중 엔진이 정지하거나 폭발하는 경우도 있어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이야기했다.

14일 오후 찾은 화성시 만세구 양감면의 한 주유소. 한산한 모습이다. 이 주유소는 최근 오피넷에 ‘가짜석유’ 위반 업소로 공표됐지만, 실제로는 이동판매차량 배달 과정의 혼유 사고로 적발된 사안으로 지자체가 사정을 참작해 과징금으로 처분을 감경했다. 2026.4.14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14일 오후 찾은 화성시 만세구 양감면의 한 주유소. 한산한 모습이다. 이 주유소는 최근 오피넷에 ‘가짜석유’ 위반 업소로 공표됐지만, 실제로는 이동판매차량 배달 과정의 혼유 사고로 적발된 사안으로 지자체가 사정을 참작해 과징금으로 처분을 감경했다. 2026.4.14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법령 문구 그대로 쓸 수밖에”… 위반 경위 구분 안내 개선 필요

이와 관련 오피넷을 운영하는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는 “각 지자체에서 위반 사실을 입력하면 오피넷에 자동으로 연동되는 구조”라며 “불법 유형을 디테일하게 표시하려면 전국 지자체 행정 담당자들이 구체적인 사항을 입력해주면 반영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선 지자체들은 법령 구조상 ‘가짜석유’ 외 공표 문구를 달리 쓸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용인시 관계자는 “석유사업법 29조상 가짜석유 제조 등의 금지 항목으로 적발된 사안이라 오피넷 공표 시 해당 법령 문구가 그대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화성시 관계자는 “경유에 등유가 혼합된 가짜석유로 통보가 오면 29조에 따라 동일하게 처분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결국 혼유 실수든 고의 불법 제조든, 소비자들이 찾아보는 홈페이지 화면에는 똑같이 ‘가짜석유제품 제조 등의 금지의무 위반’만 표시되는 셈이다. 단속 취지와 달리 소비자 혼란과 업주 피해를 동시에 키우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만큼, 위반 경위를 구분해 안내할 수 있는 공표 방식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석유공사 측은 “‘가짜석유’도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혼유·가짜석유 제조 등으로 구분이 가능하나, 지자체 입력 시 구분해야 하는 행정적 부담이 있고 불법행위 공표 방법 자체가 산업부 법령으로 정해진 사항이라 세부 카테고리를 만들려면 정부 지시 등이 요구된다”며 “지자체 등 관계부서 의견 수렴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