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중순 절정… 전국 최대 진달래 군락지 ‘장관’

숙종도 펼쳐본 요충지… “하늘이 베푼 곳” 기록

고려 천도와 함께 이름 붙은 ‘진산’의 역사

고려산성·사찰 흔적까지… 봄길 따라 만나는 문화유산

고려산 정상 쪽에 군락을 이루며 활짝 핀 진달래꽃. 2026.4.13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고려산 정상 쪽에 군락을 이루며 활짝 핀 진달래꽃. 2026.4.13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시인 김소월이 강화에서 났더라면 그의 시구(詩句)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은 아마도 ‘강화에 고려산 진달래꽃’이 되었을지 모른다. 고려산은 전국 최대 진달래 군락지로 손꼽힌다. 4월 중순이면 1주일 남짓한 기간에 10만 명이 훌쩍 넘는 인파가 정상부를 곱게 물들인 진달래를 보기 위해 고려산으로 몰려든다.

예로부터 고려산에 둘러싸인 강화읍내를 일컬어 ‘하늘이 베푼 곳’이라 했다. 1690년 8월 어느 날, 병조판서 민암은 임금 숙종과 강화도 일대의 방어체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 민암은 소매에서 지도 한 폭을 꺼내 펼친 뒤 짚어가며 설명했다. “여기가 고려산이고, 저기가 혈굴산(穴窟山, 혈구산)인데, … 실로 하늘이 베풀어 성을 만든 곳입니다.”

조선시대 임금 중에서도 강화도 방어체계 마련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숙종은 이렇듯 신하들과 강화지역 지도를 펴놓고 현장을 둘러보듯 지세를 살폈다. 병조판서 민암이 임금에게 강화를 설명하면서 첫 번째로 꺼내든 곳이 고려산이다. 강화에서는 고려산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16세기 편찬된 관찬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강화도호부’ 편에는 고려산(高麗山)을 강화의 진산(鎭山)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는 강화도 하천을 이루며 바다로 빠져나가는 물길 여럿이 고려산에서 시작한다고 나와 있다. 하포(蝦浦), 염점포(鹽岾浦), 조산포(造山浦), 말오을포(末吾乙浦), 두모천(豆毛川), 동락천(東洛川), 고려천(高麗 川), 오리천(吾里川) 등이다. 지금은 강화에 사는 사람들조차 생소한 하천과 포구의 이름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근원이 고려산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염점포로 들어간다’고 한 고려천이다. 고려산에 고려천, 언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드러나 있지 않다. 고려산과 고려천이라는 명칭은 고려가 도읍을 강화로 옮기면서 생겨났을 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될 때만 해도 고려산에는 사찰이 많았던 듯하다. 국정사(國淨寺), 적석사(積石寺), 월명사(月明寺), 홍릉사(弘凌寺), 백련사(白蓮寺) 등이 고려산에 있다고 적어 놓았다.

고려산을 옛적에는 오련산(五蓮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고구려 때 인도(天竺)의 승려가 이곳에서 다섯 빛깔의 연꽃을 날려 떨어진 곳에 각각 사찰을 지었는데, 그 절이 청련사, 백련사, 적련사 등이라고 한다.

고려산 정상 가까이에 있는 ‘고려산오정’. 오련지는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군부대에 있어 출입이 통제돼 있다. ‘고려산오정’은 오련지를 알리기 위해 새로 파 놓은 연못이다. 2026.4.13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고려산 정상 가까이에 있는 ‘고려산오정’. 오련지는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군부대에 있어 출입이 통제돼 있다. ‘고려산오정’은 오련지를 알리기 위해 새로 파 놓은 연못이다. 2026.4.13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고려산 정상부에는 오련산의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우물도 있다. 오련지(五蓮池)다. 산 정상에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출입이 통제돼 지금은 그 우물을 볼 수는 없고, 그 아래에 ‘고려산 오정(五井)’이라는 명칭을 달아 새로 파 놓았다.

고려산에는 ‘고려산성’도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흙으로 쌓은 고려산성의 둘레가 1만9천372척이라고 했다. 백련사 부근에 고려산성 가는 길을 알리는 표지판과 이를 설명한 안내판도 있다.

안내판에는 ‘1232년 고려가 천도하여 나라 이름을 따서 고려산이라 고쳐 부른 우리나라 유일의 진산(鎭山)’이라면서 ‘정상부와 계곡을 감싸고 있는 포곡식(包谷式)이며 토축과 석축이 혼합된 토석성(土石城)이며 성안에는 3개의 연못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고려산의 고려산성터. 흙과 돌로 쌓은 토석성이라고 하는데, 요새는 허물어져 내린 석성 부분이 눈에 띌 뿐이다. 2026.4.13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고려산의 고려산성터. 흙과 돌로 쌓은 토석성이라고 하는데, 요새는 허물어져 내린 석성 부분이 눈에 띌 뿐이다. 2026.4.13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고려산성의 흔적을 찾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다. 백련사 쪽에서 표지판이 가리키는 대로 왼편으로 꺾어 고려산 정상부 가까이 가야 한다.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인지 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다. 없는 길을 만들어 가며 10분 이상 오르다 보면 허물어진 성곽의 흔적을 만나게 된다. 그나마 강화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온전한 형태의 고려 유적인가 싶어 반갑기 그지없다. 무너진 성벽 라인을 따라 진달래가 피어 있었다. 800년 전 봄에도 고려성을 지키는 초병들의 눈앞에는 저 진달래가 한창이었을 테다.

화남(華南) 고재형(1846~1916) 선생도 강화도 구석구석을 방문해 남긴 ‘심도기행’에 고려산과 청련사, 백련사, 적련사(적석사) 등을 노래하고 관련한 이야기를 보충해 놓았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