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 시작되고 문자 배움 기록
구전 문서화로 기존 역사 새 도전
요즘 학생 본·족보 필요없다 생각
‘자신의 역사’를 잊어가고 있다
유목인은 살아가는데 문자가 필요 없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풀, 양, 말이었다.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목초지를 계절에 따라 이동하면서 말을 타고 양을 키우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그리고 양을 노리는 늑대를 잡는 사냥 기술과 주변 씨족과의 전투에서 이기는 싸움 실력이 필요했다.
유목민의 아이는 태어나서부터 말 타는 기술을 익히면서 세상에 자신의 존재감을 처음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청년기에 사냥과 전투 기술을 배우면서 세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유목민에게는 문자가 없기 때문에 책도 필요 없었다. 유목민 개인은 자신이 유목민으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부모와 조부모의 이야기를 통해서 기억했고 이것을 그대로 자신의 아들과 딸 그리고 손자와 손녀에게 전해주었다.
세대를 통해서 전해지는 구전이 유목민 개개인과 공동체의 관습이 되었고 전통이 되었다.
유목민 가족은 3대가 한 개의 유르타(게르)에서 매일 같이 살아간다. 위험한 유목 생활에서 가족 구성원은 자연스럽게 경험이 가장 많은 최고 연장자에게 의존하게 되었고 이런 이유로 가부장제가 정착하게 되었다.
유목 사회의 구성원들은 최고 연장자에게 충성할 의무가 있었고 그는 구성원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었다. 한 집안에서 장남이 결혼하면 독립해서 자신의 유르타를 가질 수 있었다. 둘째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유목인 사회에서는 막내가 결혼하고 부모를 모시면서 살았다. 이렇게 한 가족이 다른 가족을 만나서 씨족이 되고, 한 씨족은 다른 씨족을 만나서 부족이 되고, 한 부족은 다른 부족을 만나서 국가를 이루었다. 그리고 인구는 세대를 거치면서 늘어났다.
농경 정주민은 족보를 책으로 만들어 자신의 뿌리를 기억했고 후손에게 남겨주었다. 문자가 없는 유목민은 자신으로부터 7대까지를 머릿속에 기억해야만 했다. 7대까지 자신의 조상을 모르는 유목민은 유목 공동체에서 천대받았다.
유르타에서 할아버지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는 손자와 손녀들에게 옛날이야기 방식으로 자신의 조상들이 누구였는지를 전해주었다.
이렇게 유목민 한 집안의 기원과 형성이 후대까지 대대손손 전해질 수 있었다.
근대화가 시작되고 유목민이 정주를 시작하면서 유목민도 문자를 배우고 기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구전으로만 전해져 왔던 족보를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7대까지는 기억하는 전통을 유지했다. 유목민 한 집안의 족보는 단순한 일개 가족의 기록이지만 씨족의 족보와 부족의 족보는 유목민 공동체 역사의 기록이었다.
유목민을 두려워하는 정주민은 그들을 야만인이라고 역사에 기록하고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였다. 따라서 유목민 구전의 문서화는 정주민이 지배했던 기존의 역사에 새로운 도전이 되었다.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인은 유목민 출신이다. 제정러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조금씩 정주화했고 소비에트체제에서 완전한 정주민이 되었다.
구전의 역사를 책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여전히 7대 조상을 암기하려고 노력한다. 설령 7대까지 모른다고 해도 최소한 고조부까지는 기억한다. 그리고 옛날처럼 할아버지로부터 가문의, 씨족의, 그리고 부족의 역사를 듣고 그것을 후손에게 다시 전해주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의 본을 그리고 족보를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고, 부모 역시도 자식들에게 조상의 이야기를 알려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먹고 살기 바쁘고 다양한 SNS를 보느라 바빠서 정작 중요한 것을 전해주지 못하는 현실이 심화되고 있다.
야만인이라고 평가되었던 유목민은 기록 없는 영원한 기억을 후대에 전해주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정주민은 기억 없는 기록만을 창고에 쌓아두고 자신의 역사를 잊어가고 있다.
/성동기 인하대 프런티어창의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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