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골목 시민 온기로 채워가는 ‘빙고(氷庫)!’

화강석 두른 외벽, 100년전 건축 양식

목조 구조물이 지붕 받드는 내부 모습

어시장 들어선 1931년 본격 얼음 공급

재생 과정 훼손 최소화해 공간 재구성

아카이빙 카페 거쳐 현재는 식당 변신

화강석으로 쌓아올린 얼음창고. 2026.4.13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화강석으로 쌓아올린 얼음창고. 2026.4.13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인천 개항장 거리에도 본격적으로 얼음이 공급되기 시작했다. 이 얼음은 인천 앞바다에서 잡아 항구로 들어온 물고기를 운반하는 데 활용됐을 뿐 아니라, 시민들이 더운 여름을 나는 데에도 쓰였다.

서울까지 가지 않고도 인천에서 얼음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얼음을 대량으로 보관하기 위한 공간도 마련됐다. 상가·가정마다 냉장시설이 갖춰지기 전의 일이다. 인천 중구 개항로 7-1(중앙동4가 8-8)에 위치한 얼음창고는 현재 인천에 남아 있는 유일한 근대기 빙고(氷庫)다.

후미진 골목에 자리한 이 작은 창고는 100년 전 창고 건축양식이 유지되고 있다. 이곳에 더 이상 얼음을 저장하지 않고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지만, 인천의 근대 얼음 유통의 역사를 간직한 채 시민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주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 100년 전 얼음이 머물던 공간

신포시장을 지나 좁은 골목에 들어서면 주변 건물들과는 외관부터 다른 얼음창고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범위를 좀 더 넓혀 신포동 일대의 여러 근대 건축물들과도 건축 양식과 외관의 형태가 확연히 다른 것을 한눈에 알아챌 수 있다. 시멘트로 마감된 벽이 아닌 화강석으로 둘러싸인 외벽은,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붉은 벽돌보다 크기가 2~3배 큰 정방형 모양의 화강석이 쌓여 있다.

출입구 높이는 일반적인 출입구보다 낮다. 키가 170㎝를 넘는 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정도다. 출입구 철문으로 들어가면 내부 바닥이 푹 꺼진 것처럼 낮게 깔려 있다. 33㎡(10평) 남짓한 내부 공간은 목조 구조물이 지붕을 받들고 있는 구조다. 얼음창고로 쓰이던 공간답게 시원함이 느껴진다.

개항로의 얼음창고는 같은 자리에서 약 100년의 시간을 견뎌왔다. 토지대장에는 1920년에 이 공간의 토지가 분할이 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시기부터 사료를 통해 건물의 형태가 확인되는 1933년 이전에 얼음창고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천 중구 옛 얼음창고 입구. 2026.4.13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인천 중구 옛 얼음창고 입구. 2026.4.13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100년 전 개항장 거리에 왜 얼음창고가 들어섰을까. 1920년대 인천에서 얼음을 구매하려면 서울 한강까지 가야 했지만, 1930년대에는 인천에서도 얼음 제빙이 가능해졌다. 자연스럽게 인천의 얼음 소비량도 많아졌다.

인천시가 펴낸 ‘근대문화로 읽는 한국 최초 인천 최고’를 보면 중구 북성동 매립지에 대규모 어시장이 들어선 1931년 여름부터 임경상점은 어시장용 얼음 제빙을 시작했다. 지금의 대한제분 공장 맞은편에 어업용 제빙공장이 설립되면서 시중에 얼음이 본격 공급됐다.

이 건물이 위치한 중동4가 일대는 개항 이후 형성된 각국 조계지 가운데 일본인 거주 지역이었다. 인근에는 큰 도로를 끼고 조선식산은행 인천지점, 인천 미두취인소, 인천 우편 등이 자리해 있었던 만큼 상업·무역이 활발히 이뤄진 번화가였다. 제빙 기술의 도입으로 당시 인천의 어민, 상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얼음을 쉽게 접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얼음을 보관할 창고 역시 수요도 커졌을 것이다.

1937년 6월26일자 매일신보를 보면 무더운 날씨에 당시 인천부에서 하루 20t의 얼음이 소비됐다는 기록이 실려있다. 인천항으로 들어온 어획물을 냉장보관하기 위한 용도와 함께 이곳 거주민들이 쓰는 소비량이 증가하면서 ‘얼음 부족’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인천 중구 개항로 7-1에 위치한 옛 얼음창고. 2026.4.13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인천 중구 개항로 7-1에 위치한 옛 얼음창고. 2026.4.13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 시간을 잇는 건축재생 과정

건축된 지 100년에 가까운 얼음창고는 원형을 보존하는 방식의 리모델링 과정을 통해 재단장했다. 현 건물 소유주는 건축가인 이의중(47) 건축재생공방 대표다. 그는 이 건물을 2014년 매입해 리모델링 작업을 했다. 그 이후 얼음창고는 ‘아카이빙 카페 빙고’를 거쳐 식당 ’백스트리트415’로 활용되고 있다.

이 대표는 일본 유학 시절 ‘재생건축’을 배웠다. 최대한 초기 형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이 공간을 활용했다. 매입 당시에는 이 건물의 과거 용도도 역사도 잘 알지 못한 채로 시작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주변 사람들을 통해 유리나 교과서를 쌓아뒀던 창고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이후 여러 사료와 증언을 토대로 얼음창고였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화강석 외장재’ ‘좁은 창문’ ‘단열 마감재’로 설계된 이유를 뒤늦게 알게 되면서 재생건축 방식의 리모델링 계획을 구체화했다.

음식점으로 쓰이고 있는 얼음창고 내부. 2026.4.13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음식점으로 쓰이고 있는 얼음창고 내부. 2026.4.13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매입 당시 얼음창고 내부 벽에는 흙으로 된 마감재가 발라져 있었고, 나무살이 나란히 서 있었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탓에 흙이 일부가 무너져 내린 상태였고, 비를 맞아 지붕도 일부가 훼손돼 있었다고 한다.

그는 건물 원형을 파악하기 위한 설계도부터 다시 그려나갔다. 이는 건물 원형이 갖고 있는 가치에 대해 먼저 해석하고, 훼손을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공간을 재구성하는 과정이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기존의 창고의 형태는 많지만, 화강석으로 만들어진 창고 건물은 흔치 않았기 때문에 벽돌과 다른 질감을 살려 외관을 최대한 유지했다.

내부는 최대한 넓은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창고 건축물의 특징인 ‘트러스(truss) 구조’를 살렸다. 삼각형의 골조로 하중을 분산해 중간 기둥이 없이도 지붕의 하중을 버틸 수 있는 원리다.

원형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공간을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는 수리가 불가피했다. 무너져 내린 벽면의 마감재를 긁어내는 과정에서 화강석을 그대로 드러내보였고, 나무살도 그대로 살렸다.

나무로 된 트러스 구조도 오랜 시간 빗물을 맞아 훼손된 접합부들은 손봐야 했다. 전체 구조 자체를 바꾸기보단 트러스를 지지할 수 있는 나무 기둥을 보강하기로 결정했다.

원형을 최대한 살린 얼음창고의 트러스 구조. 천장의 보강한 부분 색깔이 더 밝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2026.4.13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원형을 최대한 살린 얼음창고의 트러스 구조. 천장의 보강한 부분 색깔이 더 밝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2026.4.13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얼음창고를 방문하면 원래의 창고에는 없었지만, 리모델링 과정에서 덧붙여진 나무 기둥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봐도 어디가 새롭게 고쳐진 부분인지 색깔로 구분이 가능하다.

통상적인 리모델링 과정에선 오래된 나무 자재와 새 나무 자재를 구분할 수 없도록 색깔을 덧입히고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최대한 기존의 목조와 맞는 부재를 사용하고자 일일이 직접 제재해서 말려 가공한 맞춤 기둥을 만들었다”며 “오랫동안 사용된 부재는 산화가 돼 색깔이 검고 새로운 부재는 색깔이 밝다. 색칠해서 똑같은 톤으로 맞춘 게 아니기에 시간이 지나면 신재도 점점 진해질 것인데 이는 시간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무조건 다 원형을 살리며 고치는 것도 좋지만, 그게 불가능할 때에는 부재를 새로 바꿀 것인가. 그것들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덧붙일 것인가 선택을 해야 한다”며 “100년 전 건물을 고친 지금이 미래세대 입장에선 역사가 된다. 처음 원형 그대로에서 가미된 부분들이 있는데, 그 부분을 고려해 어떤 부분을 고칠지 생각한다면 현 세대의 작업이 중간다리인 셈”이라고 했다.

얼음창고 트러스 구조를 보강한 목재 기둥. 새로 덧댄 기둥의 색깔이 더 밝다. 2026.4.13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얼음창고 트러스 구조를 보강한 목재 기둥. 새로 덧댄 기둥의 색깔이 더 밝다. 2026.4.13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100년의 시간을 이어붙이는 얼음창고의 재생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얼음창고에 방문한다면 기존의 목조 구조와 새롭게 덧댄 부분을 눈으로 감상하며 건축물에 담긴 시간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 동시에 이곳은 100년 전 얼음을 사고팔던 인천 근대기를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남아있다.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