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역할놀이 성인돼도 지속
중요한 건 직위·직책 아닌 행동
역할에 맞는 역량 갖추기도 필수
배역보단 배우 관점서 접근해야
어린 시절에 하는 것 중 하나는 역할놀이다. 이 놀이를 하는 동안 잠시나마 다양한 역할을 해보게 된다. 그런데 이때 특정한 역할을 하고 싶어 하거나 이를 꺼리는 경우도 발생한다. 대개 멋지게 보이거나 좋아 보이는 역할은 선호도가 높다. 원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면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어린 시절의 이와 같은 역할놀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이어진다. 조직에 몸담고 있다면 크게 리더의 역할과 팔로워의 역할을 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다만 어렸을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하고 싶어 하는 역할, 즉 배역(配役)을 직접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리더의 역할은 자신이 선택하기보다는 선택받아야 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특정 역할을 맡았을지라도 그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리더의 역할을 맡게 되었을지라도 팔로워의 역할을 저버릴 수 없고 팔로워의 역할을 맡았을지라도 일정 부분은 리더의 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조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도와 빈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가정이나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이며 각종 운동경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개인에게 부여되거나 해야 하는 다양한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구되는 것들이 있다. 우선 역할은 명사(名詞)가 아니라 동사(動詞)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직위나 직급, 직책 등은 역할이 아니다. 부여된 명칭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명칭이 있다고 해서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이는 알고 있는 것을 실제로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해당 명칭에 부합되는 말과 행동이 나타날 때 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어떤 역할이든지 간에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할 때 비로소 이름값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해당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역량은 하고 있는 일이나 해야 할 일과 관련된 지식이나 기술은 물론, 이에 대한 태도 등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그래서 부여된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면 학습과 체험 등을 통해 역량을 개발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역량이 없거나 부족하면 부여받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무리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러한 역량은 개인의 관심과 의지에 의해 얼마든지 개발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역할은 현상(現象)이 아니라 본질(本質)로 접근해야 한다. 예를 들면 어떤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경우, 배역이 아니라 배우(俳優)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배역을 하고 싶은지보다 어떤 배우가 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배역은 현상이고 배우는 본질이기 때문이다. 본질에 집중하면 스스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다. 특정한 역할을 고집할 이유나 필요도 없다. 지금 하는 역할이나 일 자체가 본질을 구현하기 위한 하나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자신의 역할을 동사와 역량 그리고 본질로 접근하면 하고 있는 일과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가 달라진다. 또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알게 된다.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구분할 수 있다. 이른바 목적이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본질로 바라보면 자신이 하고 있는 역할이 달리 보인다. 그 역할이 주연이든 조연이든 문제될 것이 없다. 존재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사람은 존재하는 목적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존재하는 목적, 즉 본질을 아는 것은 모든 역할에 있어 기본이자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혹 지금 하고 있는 역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본질이 무엇인지 들여다보자. 그리고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본질을 들여다보면 생각이 달라지고 행동이 변할 수 있다.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김희봉 대한리더십학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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