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다니는 친척언니의 딸
月 60만원 연구비에 생계 고충
‘쉬었음 청년’으로 남을까 불안
100년 후엔 다른 시각일 수도?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친척 언니의 딸 A를 오랜만에 만났다. 새침했던 고교생은 이공계 대학원에 다니는 번듯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표정이 이미 좋지 않았다. 고모할머니, 당숙 어른, 당숙모 등 도대체 무어라 불러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어른들에게 취직은 했는지, 남자친구는 있는지, 왜 여태 부모 등골을 빼먹고 있는지 한참 잔소리를 들은 후였기 때문이었다. “괜히 데려왔어. 안 그래도 스트레스 받는 애를.” 친척 언니가 뾰로통한 얼굴로 내게 귀엣말을 했다. 이젠 세월 변한 걸 알고 그런 말 좀 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어른들은 참 꿋꿋하게도 변하지 않는다.
결혼식이 치러진 교회는 아주 오래된 건물이었다. 이곳에 얼마나 오랫동안 서 있었을까? 나는 돌벽을 쓰다듬어 보았다. 또 봄을 훌쩍 건너뛰고 이르게 여름이 오려는지 날이 더웠다. 결혼식은 끝날 줄을 몰라서, 나는 가만가만 밖으로 나왔다. 재킷을 벗어 팔에 감은 뒤 돌계단에 앉았다. 해를 받은 뒷목이 뜨끈했다. A가 저만치서 걸어오고 있었다. 찬 커피를 손에 든 걸 보니 나처럼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일찌감치 빠져나온 모양이었다. A가 커피를 내밀었다. “괜찮아. 너 마셔.” A가 고개를 저었다. “전 한 잔 다 마셨어요. 이거라도 들고 있어야 다시 들어가자 소릴 안 들을 것 같아서 한 잔 더 산 거예요.” A는 내 옆에 풀썩 앉았다.
“다들 능력도 좋아. 어떻게 이렇게 따박따박 잘들 살죠, 이모?” 결혼식 주인공들 이야기인가 보았다. 나는 대학원에서 한참 공부 중인 A가 너무 부럽다고 생각하던 참이라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위로하지 마요. 저 요즘 겨우 60만원 받으면서 일하고 있으니까요.” 월 130만원이었던 연구비가 깎여 60만원을 받고 있단다. 학교 앞 원룸 월세가 70만원이라 엄마에게 미안해 죽을 지경이란다. 나중에 취직해서 갚으면 되지, 말을 하려고 했는데 그 말도 이미 짐작해버린 A가 먼저 말한다. “나중에 취직해도 못 갚을걸요? 나 살기 바쁠걸요?” 질문도, 대답도 A는 다 알고 있다. 그럴 땐 커피 속 얼음이나 와그작 씹는 편이 나은데, 그러기엔 이가 시리다, 이제.
아무래도 이 교회는 100년은 족히 된 곳 같다. 반들반들 닳은 돌계단만 봐도 그렇다. 100년 전 이 돌계단을 사뿐사뿐 밟고 올라간 이들은 누구일까? 무명저고리에 몽당치마를 입고, 댕기머리를 이젠 단발로 자를까 말까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하던 열여섯 살 혹은 열여덟 살 여자아이였을까? 성경을 들고 계단을 오르는 그들의 등 뒤에서 공부시켜놨더니 전도꾼이나 될 생각이냐며 비아냥거리는 늙은이들도 있었겠지. 1920년대였을 테니 충분히 그랬을 법하다. 예배가 끝나고 나면 삼삼오오 모여 떠들었겠지. 남학교에서는 역사와 물리, 화학, 국제법도 가르치는데 왜 여학교에선 같은 등록금으로 밤낮 성경과 가사와 재봉 따위만 가르치느냐 열띠게 비판도 했을 것이다. 여기서 100년이 더 지난다면, 나중에 이 계단에 나처럼 앉아 누군가는 2026년 이 봄에 계단을 누가 올랐을까, 상상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나는… 쉬었음 청년 같은 걸로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을까요?” A의 말에 내 이십대 중반 시절을 떠올렸다. 쉬었음 청년 같은 단어가 없었으니 내가 그렇게 기록될 리야 없겠으나 A의 심정과 그때의 내 심정이 다를 건 없었다. 이십대는 어쩌자고 그렇게 불안했을까? “100년 전 경성의 관립여학교에선 일본식 예의범절을 가르쳤거든. 앉아서 문 여는 법, 담배 재떨이 내놓는 법, 그런 걸 배웠대. 그게 고작 100년 전이야.” A가 소리나지 않게 입을 쩍 벌렸다.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반역을 꿈꾼 것도 그때쯤이었다. 직업 여성이 되기를 꿈꾸었고, 경제적 자립이 일순위가 된 시기였다. “100년은 그런 시간이야. 100년 후엔 쉬었음 청년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게 될지 몰라. 지금이랑은 영 다른 시각일 수도?” 이런 나이브한 말 따위 A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서 나는 그냥 하하 웃으며 커피잔을 마저 비웠다. 월 60만원 받는 대학원생에게 커피를 얻어 마신 것이 미안해 많지도 않은 용돈을 지갑에서 꺼냈지만 A는 꺄악 비명을 지르며 나에게서 달아나 버렸다.
/김서령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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