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학생 300여명 “이승만 정권 퇴진”
부정선거 항거한 인천 민주화 운동 불씨로
여든 백발 김승웅 옹 “전국이 시끌시끌한데
인천만 잠잠해선 안 된다는 마음으로 용기”
“전국에서 민주화를 외치는 학생 등 시민들로 들끓었는데, 인천만 가만히 있을 수야 없었죠.”
1960년 4월 19일 오전 인천공업고등학교(현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학생 300여명이 담장을 넘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옛 숭의사거리 일대에 “이승만 정권 퇴진”을 외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시 인천지역 민주화운동의 불씨가 된 역사적 사건이었다.
전국에서는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분노한 시민들의 시위가 확산되고 있었다. 경찰은 경남 마산에서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숨진 16세 고등학생 김주열군의 시신을 마산 앞바다에 몰래 유기했다. 서울에서 민주화 시위에 참여한 후 귀가하던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정부가 동원한 폭력배들에게 습격을 당하는 일까지 생기자, 독재 타도에 대한 열망은 다음날 아침 인천까지 닿았다.
학교 담장을 넘었던 학생들은 이제 나이 여든이 지난 백발의 노인이 됐다. 학교 운동장 단상에 올라 학생들을 모았던 기계과 3학년 1반 반장 김승웅(84)씨는 “정권 퇴진을 외치는 시민들로 전국이 시끌시끌한데, 인천만 잠잠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용기를 낸 것”이라며 “선생님들은 1~2학년 학생들의 동참을 막기 위해 교실서부터 정문을 막아서기도 했다”고 했다.
1교시를 마치고 인천공고 교정을 뛰쳐나온 학생들은 수봉산을 넘어 옛 숭의사거리 일대로 향했다. 제물포역으로 향하던 학생들은 도로를 막아선 경찰차에 돌을 던지며 행진을 이어갔다. 거리에는 최루탄 연기가 자욱했고, 곤봉을 든 경찰이 길을 막아섰다.
안재훈(84·당시 기계과 3학년)씨는 “친구들 모두 독재정권에 맞서야 한다는 필사적인 마음으로 경찰을 피해 제물포 일대를 달렸다”며 “결국 도원역 근처에서 경찰에게 붙잡혀 8시간 넘게 조사를 받고 나왔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그 거리에 설 것”이라고 했다.
최승일 기념사업회장 “함께 나섰던 친구들이
많이 세상을 떠나 참석하는 이들도 줄어”
이서준 학생회장 “선배들의 용기를 기억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사람 다짐”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인천공고 졸업생 50여명은 지난 2023년 11월 ‘(사)인천기계공고 4·19혁명 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를 꾸리고 매년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최승일(84·당시 기계과 3학년) 기념사업회장은 “거리에 함께 나섰던 많은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 기념식에 참석하는 이들도 줄었고, 교정에 마련된 ‘4·19학생의거기념탑’도 많이 녹슬었다”며 “시간이 흐르더라도 민주화를 위해 힘썼던 이들의 노력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기념사업회는 17일 오전 11시께 인천 미추홀구 인천기계공고 교정에서 재학생과 내빈 등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4·19 혁명 66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유정복 인천시장, 정해권 인천시의회 의장,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등도 행사장을 찾았다. 참가자들은 ‘4·19의 노래’를 제창하고, 교내 4·19 기념탑에 헌화했다.
이서준(18) 인천기계공고 학생회장은 “4·19 기념탑 앞을 지날 때마다 선배들의 용기를 기억하고, 선배들이 보여주신 민주화 정신을 본받아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고 했다.
/송윤지기자 sson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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