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공포의 발생 조건 서사 시작
관계 형성 순간 성질 바뀌어
집념, 두려움 짓밟는 발판 돼
폴란드 거장 안제이 바이다 감독은 500명 규모의 엑스트라가 모인 촬영장으로 이동하던 중, 잠시 차를 세워 달라 요청했다. 그는 차에서 내려 구토를 했고, 이 일화는 곧 거장조차 피할 수 없는 중압감의 사례로 회자됐다. 사람들은 그가 속을 게워낼 정도로 느꼈던 압박의 근원을, 잘 찍고자 했던 베테랑 감독의 집요함에서 찾았다. 결국 이 에피소드는 하나의 명제로 수렴된다. 집착이 없다면 그에 따르는 공포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역설하면 공포의 근원은 집착에서 비롯된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필 로드, 크리스토퍼 밀러, 2026) 역시 이러한 ‘공포의 발생 조건’을 서사의 출발점부터 전제한 작품이다. 이야기는 태양 에너지를 좀먹는 미지의 생물과 그로 인해 인류가 머지않아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곧이어 과학 교사였던 그레이스(라이언 고슬링)에게 프로젝트 참여를 사실상 강제하면서 그의 삶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떠밀린다. 더 나아가 편도에 가까운 우주 비행이라는 전제는 선택의 여지마저 제거된 공포를 예고한다.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에바(산드라 휠러)라는 여성은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다. 그녀는 인류가 마주한 공포를 응축한 상징처럼 기능한다. 강요된 선택이라는 폭력성마저 재앙을 막기 위한 불가피성으로 정당화된다. 그레이스의 두려움은 개인의 감정이면서 동시에 제도가 부과한 편향적 공포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른 뒤, 타우 세티 항성계에 도달한 그레이스는 극단적으로 고립된 상황과 마주한다. 더불어 자신에 대한 기억마저 온전하지 않은 상태는 존재 자체를 흔드는 또 다른 층위의 공포다. 광활한 우주라는 배경 역시 인간이라는 존재를 미세한 점으로 환원시키며 근원적 불안을 증폭시킨다.
이러한 공포는 외계 생명체 록키와의 첫 조우에서 가장 직선적으로 분출된다. 예상치 못한 생명체와의 만남은 일종의 충격으로 기능하며 점프 스케어라는 공포 장르의 전형적 설계까지 체감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낯섦은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일정한 계기를 통해 두 존재가 상호 공감하며 공포는 차츰 다른 방향으로 전환된다. 영화가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초기의 공포가 ‘미지의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후의 공포는 ‘상실의 예감’에서 발생하기 시작한다. 관계가 형성되는 순간 공포의 성질이 바뀐다.
이 변화는 이야기 중반부, 예기치 못한 변수와 함께 더욱 선명해진다. 균형을 유지하던 조건들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생존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그레이스는 점차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고 그 선택은 단순히 ‘살아남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닌 방향으로 확장된다. 이 지점에서 공포는 명확하게 전환된다. 나의 생존이 아닌 타인의 운명을 고려해야 하는 순간이 도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집착은 다시 태어난다.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을 향하는 방식으로.
영화는 그 결과를 늘어놓기보다 선택의 연속에서 감정의 변화를 축적해 나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포는 점차 개인의 감각이 아닌 관계의 언어로 재구성된다. 이처럼 두 존재는 서로의 운명을 외면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단순한 동행이나 협력이 아니라 서로의 세계를 지켜내려는 선택에 가깝다.
어쩌면 이들의 움직임은 우리 전통 지신밟기를 닮아 있다. 꽹과리 장단 속에 풍악대가 마을을 돌고 상모가 원을 그리며 허공을 가르는 동안 사람들은 땅을 힘껏 딛고 밟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액운과 불안을 발밑으로 끌어내려 공동체 바깥으로 밀어내기 위한 몸짓이다. 그레이스와 록키의 선택 역시 다르지 않다. 각자의 공포를 머릿속에 가두는 대신 서로의 세계로 끌어내려 마주한다. 그리고 마치 장단에 맞춰 발을 구르듯 반복되는 선택과 행동으로 위기를 조금씩 밀어낸다. 그렇게 두 존재는 보이지 않는 재앙 위를 건너가는 법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애초에 공포는 집착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끝내 도달한 지점에서 집착은 더 이상 두려움의 근원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세계를 붙잡아 두는 마지막 끈이며 공포를 짓밟고 지나가기 위한 유일한 발판이 된다.
/유영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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