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문학동 ‘장창선 체육관’ 명칭 확정
첫 올림픽 레슬링 메달… 명예의전당 헌액
김석영·임배영 잇는 인천 레슬링 계보
170억 투입 내년 준공 및 전시실 조성
해방 이후 최초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거머쥔 인천 출신 전설의 레슬러 ‘장창선’의 이름을 딴 체육관이 지어진다. 한국 레슬링의 역사가 태동한 인천에서 그 계보를 잇는 장창선의 이름을 기억하고 이어나가겠다는 의미다.
인천시는 미추홀구 문학동 388 일원에서 건립 중인 엘리트 선수 체육관의 명칭을 ‘인천광역시선수촌 장창선 체육관’으로 확정했다고 21일 밝혔다. 인천시는 지역사회와 체육계의 지속적인 건의를 수렴해 형성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체육관 명칭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1942년 인천 동구 송림동에서 나고 자란 장창선 선수는 한국전쟁 직전 아버지가 행방불명되면서 어머니와 단둘이 어렵게 생계를 꾸렸다. 어머니는 콩나물과 새우젓 장사를 했고, 장창선 선수 또한 초등학교 때부터 신문 배달 등을 하면서 가족을 도왔다고 한다.
장창선 선수는 동산중학교 재학 시절 레슬링에 눈을 떴다. 인천의 레슬러 임배영(1929~2018) 선수가 1954년 마닐라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최초로 동메달을 목에 걸고 귀국해 숭의동 인천공설운동장에서 연 환영회 현장에 장창선이 있었다. 손천택·조준호가 2009년 한국체육사학회지에 게재한 논문 ‘광복 후 인천레슬링 발전사(임배영, 장창선을 중심으로)’를 보면, 당시 장창선 선수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그때 (임배영) 선생님 말씀이 ‘어렵고 돈 없는 학생들은 운동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하셨지. 그래서 ‘아! 돈 없는 나도 운동하면 성공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지. 결국 선생님을 찾아뵙고 동산중학교에서 레슬링을 시작했지.”
이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서울 인창고등학교로 스카우트된 장창선 선수는 1962년 첫 출전한 국제대회인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정부 차원에서 일본으로 유학도 보냈다. 1964년 10월 도쿄 올림픽 플라이급으로 출전했다. 장창선 선수는 결승에서 만난 일본의 요시다에게 안타깝게 패했지만, 레슬링에서 한국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은메달)로 우뚝 섰다. 그는 2014년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인천 레슬링 역사는 한국 레슬링의 태동기에 맹활약한 김석영(1919~1950)으로부터 시작됐다. 인천상업학교(현 인천고등학교) 재학 시절 일본인 교관·교사 등의 구타에 반발해 집단 수업 거부를 이끌다 퇴학당한 김석영은 일본 유학 후 메이지대학에 입학해 레슬링 선수로 활동했다. 1939년 전일본 레슬링 대회 라이트급에서 우승했고, 이듬해 미들급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일본 국가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김석영은 김원봉(1898~1958)이 조직한 민족혁명당 인천지부 핵심 간부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에도 참여했다. 해방 이후 인천에서 최초의 레슬링구락부(클럽)를 창립해 임배영 등을 제자로 맞았다. 이렇게 인천 레슬링의 계보는 김석영, 임배영, 장창선 등으로 이어졌다.
2000년대부터 꾸준히 이야기가 나온 ‘장창선 체육관’의 명칭 부여는 20년 만이다. 건강상 이유로 통화가 어려운 장창선 선수 대신 그의 아들은 이날 경인일보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도와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아버지도 당연히 기쁘게 생각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시가 170억8천500만원을 투입해 건립 중인 장창선 체육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연면적 3천263㎡)다. 핸드볼, 농구, 배드민턴, 배구, 태권도, 펜싱 등 다양한 종목 선수들이 훈련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됐다. 체육관 1층에는 장창선 선수를 비롯한 인천의 대표 스포츠 선수들의 기록물과 메달을 전시하는 ‘인천스포츠영웅실’을 조성할 예정이다. 인천시는 행정 절차를 거쳐 오는 9월 착공해 내년 12월 준공한다는 목표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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