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만·공항·산업·주거 겹겹이 얽힌 ‘인천’

시정 담당자라면 정책 방향키 안놓치고

지역 진단할 줄 아는 실력에 한표 던져야

이충환 언론학 박사·객원논설위원
이충환 언론학 박사·객원논설위원

지방선거 현장이 후끈 달아올랐다. 인천의 경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일찌감치 시장 후보를 결정했다. 전국에서 가장 빨랐다. 잡음도 없었다. 양당의 후보들은 ‘제물포 르네상스’를 놓고 벌써 일합(一合)을 겨뤘다. 내항 1·8부두와 주변 원도심을 친수공간을 가진 복합도시로 탈바꿈시키는 공공항만 재개발 프로젝트다. 유정복 현 시장의 민선8기 제1호 공약이란 상징성을 갖는 사업이다. 여당 주자 박찬대 의원은 유 시장의 공약사업들이 “신뢰를 쌓지 못한 정책”이라고 직격탄을 날렸고, 맞서 유 시장은 “행정을 모르는 정치공세”라고 일축했다.

박 의원은 12·3 비상계엄 당시 다수당의 원내 대표로서 ‘계엄의 밤’을 온몸으로 뚫어냈다. 유 시장은 ‘천원 시리즈’란 생활밀착형 정책으로 인천을 신생아 출생률 최고도시로 끌어올렸다. 전자가 ‘대통령과의 합’을 내세우면, 후자는 ‘일당 싹쓸이’론으로 대응한다. 전쟁 추경 편성을 놓고선 후자의 ‘지방정부 무력화’와 전자의 ‘시민의 빈 지갑’론이 맞선다. 판은 참깨를 볶는 가마솥처럼 벌겋게 달궈져 가고 있다. 깨가 튀어 오르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지켜보는 재미도 커질 것이다.

그렇다고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겠다. 나는 유권자니까. 늘 그렇듯 질문은 단순해 보인다. 누가 더 나은가. 하지만 실제로 던져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다. 기준이 흔들리면 선택은 결국 패거리 의식과 인상(印象)에 기댈 수밖에 없다. 두 개의 표심은 실체가 없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외로운 나의 자의식을 잠시나마 지지하고, 심리적 동질감을 한때나마 안겨 주지만 허상(虛像)일 뿐이다. 허상을 선택한 대가는 고스란히 나의 몫, 내 가족의 몫으로 돌아온다. 세금으로 낸 내 돈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쓰임새 앞에서 갖게 되는 그 당혹감은 오롯이 시민의 몫이다.

인천은 하나의 리듬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도시다. 원도심의 시간과 신도시의 속도가 다른 박자로 흐른다. 항만과 공항, 산업과 주거가 겹겹이 얽혀 있다. 이 ‘폴리리듬(Polyrhythm)’과 ‘폴리미터(Polymeter)’를 읽어내지 못하면 어떤 정책이라도 어설픈 합주(合奏)가 된다. 그래서 시정을 맡겠다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화려한 기교가 아니라 정확한 읽기, 즉 진단(診斷)이다. 원도심을 말하면서 지역의 정체성을 읽지 못하고, 교통을 말하면서 시민의 실제 이동 경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비전은 종이 위에서만 그럴듯하다.

선거판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당선 이후의 시간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이해가 충돌하고, 반대가 조직되고, 예산은 한정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方向)을 놓치지 않는 힘이다. 우리는 그동안 숱한 ‘좋은 계획’이 ‘어쩔 수 없는 사정’ 속에서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장면을 지켜봐 왔다. 갈등 앞에서 한발 물러서고, 부담 앞에서 결정을 미루는 순간 정책은 힘을 잃는다. 무엇을 시작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끝냈는지가 더 중요하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수도권매립지 사용종료 논란이 그렇다.

시민의 의견을 듣겠다는 말만큼 반박하기 어려운 명분도 드물다. 그렇지만 모든 상황에서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의견을 듣는 일과 결정을 내리는 일은 다르다. 과정과 책임의 다름이다. 과정을 반복하며 결정을 유예하는 순간 공동체는 피로해진다. 과거 ‘공론화위원회’니 ‘500인 토론회’니 하는 일들이 그러했다. 서로 다른 목소리를 듣되 그 사이에서 적시에, 적절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런 실력(實力)이다.

선거는 이벤트가 아니라 설계다. 구호는 사라지지만 선택은 남고, 그 선택이 도시와 나의 삶을 규정한다. 한 표가 정서나 감정의 동질감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고민이어야 하고 동의여야 하는 이유다. 정확하게 진단하고, 방향을 놓치지 않으며, 제때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실력’에 나의 소중한 한 표가 던져져야 하는 이유다. 특히나 인천처럼, 리듬과 박자가 다채로운 재즈 같은 도시에선 더욱 그렇다.

/이충환 언론학 박사·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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