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연 사회부 기자
유혜연 사회부 기자

무명배우는 오디션에서 온 힘을 다해 연기했지만 정작 캐스팅된 것은 그가 몰입을 위해 준비해 간 소품, 돌멩이였다. 최근 극장에서 정승오 감독의 영화 ‘철들 무렵’을 보다가 이 장면에서 묘한 감정이 일었다. 짜증이 났고, 동시에 좋았다.

자기 신념을 놓지 않고 버텨온 시간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사회가 인정하는 것은 대개 성공으로 귀결됐을 때다. 무명배우 정미(하윤경)의 삶이 그런가 하면, 그의 아버지 철택(기주봉)은 명문대 운동권 출신이지만 정치인도, 이름난 시민단체 대표도 되지 않았다. 그는 용접공으로 살아왔다. 실패도 성공도 아닌 부유. 그 어중간함이 오래 남았다.

생각해보면 비슷한 감정은 취재를 하다가도 가끔 밀려왔다. 기껏 써낸 기사는 세상을 바꾸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당연하다. 그럼에도 어떨 때는 스스로가 미련하게 느껴졌다. 대단한 기사도 아닌데 괜히 다 걸고 매달린 것 같아 짜증이 났다.

얼마 전 한 선배가 그런 말을 했다. 살다 보니 이제 웬만한 일로는 울지 않는데 최근 영화를 보다가 눈물이 났다고. 돌이켜보면 그건 감정을 돈 주고 산 셈이었다. 밥벌이를 하면서 예전보다 나은 음식도 옷도 살 수 있게 됐지만 소비의 쾌감은 짧았다. 반면 극장에서 표를 끊고 산 것은 잠깐의 포만과는 거리가 먼, 긴 여운으로 남는 씁쓸함이었다.

기사도 아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은 클릭을 하고 때로는 세금으로 조성된 홍보비를 통해 기사 유통에 간접적으로 돈을 댄다. ‘한국에서 기사는 공짜’라는 통념이 있지만, 사회는 어떤 방식으로든 기사에 값을 치르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사게 할 것인가. 통쾌함이나 분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곧 휘발된다. 쉬이 지워지지 않는 것은 대개 더 복잡한 감정이다. 애매한 현실 앞에 독자를 잠시 멈춰 세우는 것. 기사도 그런 여운을 남길 수 있을지 이따금 생각한다. 짜증이 나면서도 쉽게 정리되지 않는 무언가, 세상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게 만드는 한 문장 말이다.

/유혜연 사회부 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