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없이 고기만 끓여 맑은 곰탕

설렁탕과 차이 아느냐던 아버지

인사동 뒷골목 추억 있는 식당

그 집 또 가고 싶다는 신호였나

‘향교 나주곰탕’의 수육. /조용준 제공
‘향교 나주곰탕’의 수육. /조용준 제공
조용준 맛칼럼니스트
조용준 맛칼럼니스트

“곰탕과 설렁탕의 차이를 알아?” 어느 날 부친이 물으셨다. “네” 답했다. 부자간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얼마 후 부친은 세상을 뜨셨다. 질문의 진의는 영구미제가 됐다.

곰탕은 뼈 없이 고기만 넣고 끓인다. 그래서 국물이 맑다. 설렁탕은 사골과 고기를 함께 고아 국물이 희뿌옇다. 사골(四骨)은 소의 다리(4개)뼈라는 의미다. 그래서 사골곰탕은 보통 우족탕, 도가니탕 등을 말한다. 농경을 기반으로 했던 우리 민족은 도축에 익숙하지 않았다. 도축이 생활 속에 스며든 시기는 몽골 침략기로 추측한다. 유목민족이었던 몽골인들은 한반도에 도축 기술을 전했다. 도축한 고기를 여럿이 함께 먹는 방법은 국을 끓이는 것이다. 그래서 곰탕의 어원을 몽골어에서 찾기도 한다. 몽골에서는 맹물에 끓인 것을 공탕(空湯)이라 적고 ‘슐루’라 읽는다. 일부에선 이것이 곰탕의 어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말 ‘고다(고기나 뼈 따위를 무르거나 진액이 빠지도록 끓는 물에 푹 삶는다)’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곰탕의 1번지는 전남 나주다. 곡창지대인 나주는 농사용 소가 많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오일장이 섰던 곳이기도 하다. 나주읍성에 장이 열리면 장터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음식이 곰탕이었다. 1910년 문을 연 ‘하얀집’은 이문설농탕에 이어 국내 노포 서열 2위이다.

서울에도 유명 곰탕집들은 있다. 그중 인사동 뒷골목의 ‘향교 나주곰탕’은 특별하다. 가성비와 맛,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곳이다. 홀로 방문이 아니라면 일단 수육을 주문한다. 곰탕은 주로 소의 배 부위인 사태와 양지 등을 넣어 끓인다. 이 집의 수육곰탕은 아롱사태, 나주곰탕은 양지로 채워진다. 수육 역시 아롱사태다. 사태는 소의 앞다리 쪽에 있는 배 부위, 아롱사태는 뒷다리 쪽의 배 부위이다. ‘샅’은 두 다리 사이를 말하는 순우리말이다. 사타구니, 샅바, 샅샅이 등은 모두 샅에서 유래한 말이다. 사태 역시 마찬가지다. 양지는 소의 배 가운데 부분이다. 크게 구분하여 양지라고 한다. 세부적으로는 차돌박이, 양지머리, 우삼겹(업진살) 등으로 나눈다.

주문한 수육 위에는 부추와 양파 등 양념 채소가 고명으로 올라간다. 고기 한 점을 양념장에 찍어 파김치로 감싼다. 입에 넣고 씹으면 천상계의 맛이 펼쳐진다. 부드럽지만 육질감이 있고, 씹으며 심심함이 다가올 때쯤 파김치의 알리신(Allicin)이 새로운 맛을 선사한다. 이후 함께 나온 곰탕 국물을 들이켜면 완벽한 육각형 음식이 완성된다. 낱 재료가 어우러져 뽐내는 풍미가 일품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점심시간은 늘 대기 줄이 있다. 중간 휴식시간이 없던 예전에는 늦은 오후에 스님들이 수육과 소주 한 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불도장(佛跳牆)의 유혹에 담을 넘었던 스님들처럼.

이 집은 선후배의 정을 돈독히 하기 좋은 아지트다. 주머니 가벼운 선배는 저렴한 가격에 안도하고, 후배는 뛰어난 맛에 선배를 존경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수육과 곰탕으로 어깨에 힘 좀 주며 선배 노릇을 톡톡히 할 수 있는 집이다.

개인적으로는 부친과의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를 물으셨던 건, 이 집을 또 가고 싶다는 암묵의 신호가 아니었을까? 뒤늦은 깨달음이 곰탕 국물처럼 뜨겁게 목을 타고 넘어간다.

/조용준 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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