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들 그리워하다가 세상 등진 아버지
4·16 기억교실 한 켠 노트서 마주한 사연
비극의 진상규명,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
교실 한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노트를 잊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로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작은아들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마다 부모는 ‘엄마 아빠, 다녀간다’며 이 노트에 편지를 썼다.
하늘에 있는 아들의 스무 번째 생일이 된 날에도, 그리고 아이를 떠나보낸 지 3년 만에야 졸업장을 대신 받아들었을 때에도 부모는 자식 잃은 슬픔을 삼키며 편지로 안부를 전했다.
아이의 손때가 묻었을 책걸상을 어루만지다 끝내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을 부모를 떠올리니 가슴이 아려왔다.
한동안 꿈속에 보이지 않아서, 그러다가도 오랜만에 꿈에 찾아와주면 너무나 반갑고 고마워서 부모는 그렇게 다시 교실을 찾아왔다.
6년 전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세월호 참사 6주기였던 2020년, ‘4월의 봄’ 어느 날이었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4·16 기억교실’ 한 책상에 놓인 노트를 중간쯤 읽어가다 이 가족의 또 다른 슬픈 사연과 마주했다.
‘형수 될 사람하고 엄마, 이모 왔다 간다. 아버지도 니 곁으로 가셨구나. 하늘에서 우리 가족 지켜줘. 사랑한다’. 동생에게 가족의 안부를 전하며 형이 노트에 쓴 글이다.
애지중지 키운 작은아들을 그리워하던 아버지는 결국 세상을 등졌다. ‘엄마랑 아빠랑 왔다 간다 너무 보고 싶은 내 새끼!’. 바로 전 페이지에서 읽었던 짧은 한 줄의 이 글은 먼저 떠나보낸 아들에게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인사였다.
당시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라는 제목의 기획보도를 후배 기자들과 준비하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로 사랑하는 자식을 가슴에 묻은 두 아버지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비통한 소식을 접하며 시작한 취재였다. 2014년 4월16일, 그날의 시간에 갇힌 채 고통받고 있을 세월호 유족들의 헤아릴 수 없이 깊은 상처와 힘겨운 삶을 다시 살펴봐야 했다.
30대 중반이던 큰아들과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동생 곁으로 간 아버지는 생전 조울증을 앓았다고 했다. 아내와 자식들을 늘 자상하게 대하던 가장은 말이나 행동이 점점 거칠어지는 등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같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큰아들은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며칠 만에 퇴원을 시켜드렸다. 평생 처자식 뒷바라지에 힘쓴 아버지는 유서 한 장도 남기지 않은 채 가족과 이별했다.
‘4·16 세월호 참사 12주기 기억식’이 지난 16일 오후 3시께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열렸다.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 현직 대통령이 온 것은 처음이다.
세월호 유족들을 만난 이재명 대통령은 “오랜 세월 동안 매일같이 얼마나 큰 고통과 그리움을 감내해오셨을지 감히 헤아리기 어렵다”며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이어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함”이라며 “이 약속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세월호가 우리에게 남긴 숙제를 완성하는 길”이라고 했다.
6년 전 이맘때 경인일보의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 기획보도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시작됐다.
‘4월의 봄이 지나고 있다. 그들에게 했던 약속,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것일까.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다짐은 두 번 다시는 그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우리 모두의 약속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어야만 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로부터 6년의 세월이 더 흐른 2026년, ‘4월의 봄’이 또 지나고 있다. 기사 첫머리에서 독자들에게 건넨 이 이야기를 다시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안전한 사회 건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약속,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다.
/임승재 인천본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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