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턱에 막힌 시민권 ‘한 표’

 

도내 장애인 유권자수 56만명 추산

임시조치·장소 대여료 인상 미반영

시설 미비 투표 방해땐 기본권 침해

수원시 인권영향평가 도입 개선 주목

인권영향평가단 관계자가 투표소 인근 화장실의 바닥 단차를 줄자로 측정하고 있다. 3㎝에 불과한 단차도 휠체어 이용자에게는 넘기 어려운 장벽이 될 수 있다. 2026.4.23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인권영향평가단 관계자가 투표소 인근 화장실의 바닥 단차를 줄자로 측정하고 있다. 3㎝에 불과한 단차도 휠체어 이용자에게는 넘기 어려운 장벽이 될 수 있다. 2026.4.23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매년 같은 장소와 같은 권고, 그러나 매번 같은 현실. 이동약자의 투표소 접근성 문제는 전국 어느 지역을 가도 비슷한 풍경이다. 경사로와 넓은 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지자체, 건물 소유주 사이의 ‘핑퐁게임’만 이어질 뿐이다.

투표소 접근성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는 상시 시설 정비가 아닌 임시 조치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선거 관리는 선관위 몫이지만 투표소 건물을 소유·관리하는 주체는 지자체이거나 아파트 관리사무소 같은 민간이다. 선관위는 임시 경사로 설치 비용을 지원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원상복구해야 한다.

건물 자체에 경사로 등의 설치를 강제할 권한은 선관위에 없고 지자체 역시 손쓸 방법이 마땅치 않다. 장애인편의시설 설치 의무가 적용되지 않은 시기 지어진 건물이 상당수인 데다 투표소 대여도 겨우 성사된 민간 건물에 추가 시설 개선을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

경기도 내 일부 지자체의 경우 투표소 대여료는 하루 20만원 수준에 불과한데 집기를 치우고 청소까지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할 민간 건물주를 찾기 어렵다.

경로당은 이미 어르신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공간이라 선거 기간 중 장소를 내주는 것도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다.

수원시 권선구 여기산공원 게이트볼장 앞에서 전화진(74)씨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투표소를 점검하고 있다. 입구에는 경사로가 없어 진입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2026.4.23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수원시 권선구 여기산공원 게이트볼장 앞에서 전화진(74)씨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투표소를 점검하고 있다. 입구에는 경사로가 없어 진입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2026.4.23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이는 단순히 시설 편의성 논란이 아니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경기지역 투표율은 50.6%(전국 평균 50.9%)에 그쳤다. 낮은 투표율이 반복될 때마다 유권자 무관심이 원인으로 거론되지만 정작 투표하고 싶어도 물리적 한계로 투표소에 발을 들이지 못하는 이들은 통계 밖에 있다.

투표소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불편을 넘어 참정권이 실질적으로 제한되는 사안이다. 등록장애인 집계현황(2025)을 연령으로 분류하면 도내 장애인 유권자 수는 56만명가량으로 추산된다.

김한상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시설상의 미비를 이유로 특정 유권자가 사실상 투표권 행사를 방해받게 된다면 이는 헌법상 기본권 침해다. 문제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공직선거법 위반의 소지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유니버설 디자인(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 설계)을 채택하지 않은 건물을 투표소로 정한 것 자체가 선거 책임자들의 잘못이다. 1인 1표라는 원칙이 모든 시민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려면 장애인을 비시민으로 보는 태도가 공무 수행 현장에서 반헌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현장 인권영향평가에 위원으로 참여한 라이언(활동명)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선거는 민주주의 실현이라고 얘기하지만 소수자와 약자를 배제하는 사회가 반복되고 있다”며 “제도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장애인을 주체가 아닌 복지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이 이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라고 우려했다.

기자가 수원시 투표소 인권영향평가 현장에 동행해 주요 항목을 토대로 직접 평가한 결과표. 주요 투표소에서 경사로 미설치·단차·휠체어 진입 불가 등 접근성 문제가 확인됐으며, 안내체계와 화장실 접근성 미흡도 눈에 띄었다. 2026.4.23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기자가 수원시 투표소 인권영향평가 현장에 동행해 주요 항목을 토대로 직접 평가한 결과표. 주요 투표소에서 경사로 미설치·단차·휠체어 진입 불가 등 접근성 문제가 확인됐으며, 안내체계와 화장실 접근성 미흡도 눈에 띄었다. 2026.4.23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도내에서 선도적으로 투표소 인권영향평가를 도입한 수원시는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때부터 매 선거마다 평가를 실시하며 개선 권고를 내려왔다. 이번이 7번째다.

조경만 수원시 인권담당관은 “단순한 점검을 넘어 현장에서 확인된 문제를 개선으로 연결하는 실행 중심의 평가 체계”라며 “앞으로도 변화하는 사회 환경과 다양한 시민의 요구를 반영해 시민 누구나 차별 없이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선관위는 투표소 대여료 인상을 위한 예산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지만 실제 예산 반영까지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물가 상승을 감안해 대여료 인상을 위한 예산을 지속적으로 요청해 최대한 인상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며 “장애인 유권자를 위해 1층 또는 승강기가 있는 곳을 투표소로 우선 선정하고 임시 경사로를 준비하는 한편 지난 10일 장애인 관련 단체 및 보건복지부와 정책 간담회를 열어 이동약자 투표 편의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예산 확보가 지지부진한 교착을 깨려면 장애인 유권자들이 투표로 직접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정작 투표장이 이들의 투표 참여를 막고 있는 역설적인 현실이다. 수년째 반복되는 인권영향평가의 권고가 이번 6·3 지방선거에서는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