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무척이나 낯설게 보이지만 이스라엘에도 ‘이제는 대립과 갈등을 끝내야 한다’고 주창한 총리가 있었다. 이츠하크 라빈(1922~1995). 그는 젊을 적 이스라엘의 엘리트 군인이었다. 1967년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을 비롯한 아랍국가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 유명한 6일 전쟁이었다. 전쟁 영웅이 된 그는 주미 이스라엘 대사, 국회의원 등을 거쳐 총리에 올랐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와 웨스트 뱅크의 이스라엘 점령지역에서 아랍인들의 봉기가 일어난 1987년 그는 강경하게 대응한 적도 있다.

두 차례나 총리를 맡은 라빈은 이스라엘과 아랍 간의 평화와 공존 필요성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1993년 그는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를 아랍의 공식적인 대변인으로 인정했다. 그 대가로 PLO는 폭력행위 중단을 약속했다. 또한 이스라엘군이 웨스트 뱅크에서 철수하고 그 웨스트 뱅크와 가자 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자치 기반을 마련한다는 데도 합의했다. 이런 공로로 라빈 총리는 1994년 아라파트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아랍 국가 사이의 공존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처럼 여겨지던 그때 이스라엘의 우익 정치인들이 라빈을 배반자로 몰아갔다. 이스라엘의 땅을 팔라스타인에 거저 주고 있다는 거였다. 그 우익들의 불만이 마침내 폭발했다. 라빈 총리는 1995년 11월 4일, 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에서 베레타 반자동 권총을 든 유대교 극단주의자에게 암살당했다. 그로부터 30년,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는 피의 보복이 계속되고 있다.

25일(현지시간)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한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 행사장에 ‘친절한 암살자’를 자처하는 젊은이가 총격을 가하면서 진입하려다 현장에서 제압됐다. 그는 트럼프를 비롯한 미 정부 고위 관료들을 범죄자로 못박고 처단하려 했다. 역설적이게도 이 ‘친절한 암살자’가 정치적 위기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을 구해주는 친절한 도우미가 될지도 모른다.

테러는 또 다른 테러를 낳고, 그 테러는 전쟁을 잉태하게 마련이다. 이번에 ‘친절한 암살자’가 내세운 범죄자 처단이라는 명분은 오히려 그가 생각하는 범죄자의 역량을 키우는 온실이 될 수도 있다. 테러로 범죄를 잠재울 수는 없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정진오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