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한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 기쁘다.” 42.195㎞ 마라톤 풀코스 2시간 ‘마의 벽’을 깬 케냐 사바스티안 사웨의 우승 소감이다. 사웨는 26일(한국시간) 열린 런던 마라톤대회에서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침묵의 암살자’로 불리는 사웨는 6주 동안 주당 평균 200㎞를 달렸단다. 1시간 59분 30초, 뛰어난 마라톤 유전자와 도전정신, 스포츠과학과 고강도 훈련이 융합한 결정체다.

한국 마라톤 역사엔 고난과 환희의 서사가 엉켜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시상대 위에 한국인 2명이 나란히 올랐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은 2시간 29분 19초로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3위 남승룡도 2시간 31분 42초를 기록했다. 일장기를 가리고 고개를 떨궜지만 위대한 도전이자 저항이었다. 손기정과 남승룡은 1947년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감독과 코치로 나섰다. 미군정기 우여곡절을 딛고 서윤복이 ‘KOREA’(코리아) 국호와 태극기를 달고 출전했다. 강아지가 난입하는 돌발 상황 속에서도 ‘하트 브레이크 언덕’ 뉴턴힐을 넘어 세계 신기록인 2시간 25분 39초를 써냈다. ‘2시간 30분’을 깨며 대회 역사상 동양인 최초로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 힘없던 신생 독립국 한국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의 정식회원국으로 승인받고, 이듬해 1948년 런던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됐다.

한국 최초 ‘2시간 10분’ 벽은 황영조가 깼다. 1992년 일본 벳푸·오이타 마라톤대회에서 2시간 8분 47초를 기록해 2위를 차지했다. 이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로 ‘몬주익의 영웅’ 칭호를 받았다. 손기정 이후 무려 56년만에 노메달의 한을 푼 아시아의 두 번째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단 3초 차로 은메달을 땄다. 2001년에는 함기용에 이어 51년만에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했다. 아시아 신흥 강국 한국의 위상을 마라톤으로 증명했다.

한국 신기록은 이봉주가 2000년 2월 도쿄 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 7분 20초다. 26년째 깨지지 않고 있다. 당시 세계 30위권이던 기록은 이제 100위권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다. 10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했던 마라톤 강국이 2024년 파리 올림픽에는 기록 미달로 출전권조차 얻지 못했다. 인류가 ‘서브 2’ 문턱을 넘은 지금, 한국 마라톤 기록은 제자리다. 악착같이 뛸 이유가 없어진 건가.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