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솔제지 등 매출액 95% 점유 6곳

2024년까지 3년10개월간 인상 주도

공정위, 3천억대 과징금 부과·고발

문화산업 발전위한 재원 환원 촉구

인쇄용지를 공급하는 국내 제지사들의 담합 적발 소식에 소규모 출판사들이 허탈해 하고 있다. 인천 한 출판사에서 직원이 물건을 정리하고 있다. 2026.4.28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인쇄용지를 공급하는 국내 제지사들의 담합 적발 소식에 소규모 출판사들이 허탈해 하고 있다. 인천 한 출판사에서 직원이 물건을 정리하고 있다. 2026.4.28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출판사 마진을 줄여가며 독자들에게 책을 저렴하게 공급하려고 노력했는데, 정작 제지사들은 담합으로 배를 불리고 있었네요.”

인천에서 30년간 출판사를 운영해 온 윤미경(58)씨는 “경제 불황 탓에 종잇값도 오르는 줄 알고, 출간 부수를 줄이거나 마진을 낮추며 허리띠를 졸라맸었다”면서 “불가피하게 잘 팔리지 않을 책들은 출간을 보류하기도 했는데, 인쇄용지 가격 상승이 제지사들의 담합 때문이었다니 허탈하다”고 말했다.

국내 인쇄용지 판매시장에서 지난 2023년 매출액 기준 점유율이 95%에 달하는 제지사 6곳이 앞서 2021년 2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3년 10개월 동안 인쇄용지 가격 인상을 담합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22일 무림SP, 무림페이퍼, 무림P&P, 한국제지, 한솔제지, 홍원제지에 대해 총 3천38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이 업체들은 2020년 코로나19 사태에 이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으로 제지 원가 상승 압박이 커지자, 인쇄용지 기준 가격을 인상하거나 할인율을 축소하기로 협의하고 실행했다.

중소 출판사 공급사.  2026.4.28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중소 출판사 공급사. 2026.4.28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담합 기간 인쇄용지 평균 가격은 최대 약 71%나 올랐다. 2021년 2월 평균 1t당 84만1천원이던 인쇄용지 가격은 2024년 12월 1t당 143만9천원으로 상승했다. 가격을 올린 품목은 책이나 간행물에 사용되는 백상지, 교과서·학습지·만화책 등에 쓰이는 중질지, 화보·달력·카탈로그에 활용되는 아트지 등 인쇄용지다.

제지사 담합 적발 소식에 소규모 출판사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윤씨는 “출판사는 잘 팔리지 않더라도 세상에 필요한 지식을 공급하는 책을 만들려고 노력하는데, 책 제작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쇄용지 가격이 오르면 이러한 노력을 이어가기 쉽지 않다”며 “출판사도 피해를 봤지만, 무엇보다도 다양한 책을 읽을 독자들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

출판업계는 인쇄용지 가격 인상으로 출간 부수를 줄이거나 수익성이 높지 않은 전문서적, 학술서적, 신인 작가의 책은 출간하지 못하는 등 출판의 다양성이 위축됐다고 지적한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지난달 27일 성명서를 내고 “제지사들의 담합으로 인해 출판의 다양성은 위축됐고, 독자들이 다채롭고 풍성한 책을 접할 기회도 줄어들었다”며 “막대한 과징금은 출판문화산업 발전을 위한 재원으로 환원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제지사 6곳 중 담합을 적극적으로 주도한 한국제지와 홍원제지를 검찰에 고발했다. 또한, 각 제지사가 국내에서 판매하는 인쇄용지 등에 대해 담합 전 경쟁을 회복하는 수준으로 가격을 다시 결정하고, 향후 3년간 6개월마다 변경 내역을 보고하도록 했다.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