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눈빛, 단아한 손끝
세상사 살피는 수려한 솜씨
고려산 동쪽 면에 위치한 청련사
삼존상 옷주름엔 불교 미학 선명
개경의 수준 높은 장인 만들었나
강화읍내 중심가에서 승용차로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 국화리(菊花里) 고려산 동쪽 면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청련사(靑蓮寺). 이곳에 오르면 마치 깊은 산중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높지 않은 곳인데도 시야가 툭 트여 있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멀리 김포 문수산을 비롯한 산세뿐이다. 뒤로는 고려산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앞으로는 굽이굽이 산등성이가 연달아 펼쳐진다. 풍수지리를 모르는 그 누구라도 청련사 뜰에 서면 이곳이 참 좋은 명당이려니 싶다.
청련사는 고구려 장수왕 4년(416년)에 절터를 찾던 천축조사가 고려산 정상에 올라 오색 연꽃을 날렸는데, 청색 연꽃이 떨어진 자리에 지은 절이라는 창건 설화가 전하는 유서 깊은 절이다.
그 강화 청련사에 고려시대 보물 불상이 있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木造阿彌陀如來坐像). 목조는 나무로 만들었다는 얘기이고, 여래는 부처를 일컫고, 좌상은 앉은 모습의 불상을 가리킨다. 그러면 아미타는 무엇일까.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이란 말은 불교 신도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테다. 나무아미타불은 아미타불에 돌아가 의지한다는 뜻이다. 이 아미타불은 대승불교의 중심을 이루는 부처로, 이 부처를 부르면 죽은 뒤에 극락에 간다는 믿음이 퍼져 있다.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의 왼편에서 교화를 돕는 보살인데, 열심히 그 이름을 외우면 중생이 고통 속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전한다.
아미타불은 보통 극락전, 또는 무량수전에 모시는 경우가 많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 아미타불이 유명하다. 청련사는 아미타불을 모신 전각에 ‘큰법당’이란 한글 현판을 달았다. 큰법당 기둥에 세로로 써 놓은 주련(柱聯)도 다른 사찰과는 달리 한글로 돼 있다. 마치 불법에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청련사 큰법당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삼존상이 있다. 아미타불의 왼편 그러니까 불상을 마주보았을 때 오른쪽에 관세음보살이, 왼쪽에는 대세지보살이 앉아 있다.
청련사 아미타불은 2012년에 보물 제1787호로 지정됐다. 국가유산청은 ‘청련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단정하고, 우아한 상호(얼굴 모습), 단아하고 세련된 조형미, 완급 조절이 잘 표현된 옷주름 등에서 세련되고 품격 높은 고려시대 불교미술의 경향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이 불상은 고려 불교미술이 추구했던 우아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을 선명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조형적, 예술적, 종교적으로도 성숙한 완성도를 보여주는 수준 높은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또 청련사 아미타불이 불상의 특성을 감안할 때 13세기 전반에서 중반 사이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개경에서 강화로 천도한 1232년에서 1270년 사이에 개경의 수준 높은 조각 장인이 조성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의 의견과는 달리 이 불상이 경기도 광주의 약정사(藥井寺)라는 절에 있다가 18세기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청련사로 옮겨졌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있다.
높이 85㎝, 무릎폭 61㎝에 고개를 살짝 앞으로 숙인 채 앉아 있는 청련사 아미타불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비단으로 짠 것으로 보이는 옷의 앞섶이나 어깨, 팔뚝, 무릎 부위의 옷감에 수놓은 문양이 각기 다르게 짜여 있다. 또한 불상의 배 부위를 감싸고 묶은 섬세한 매듭과 그 정교한 문양이 실물을 모델로 삼아 새겼을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청련사는 오래전에 국정사(國淨寺)라고도 했다. 지금의 강화읍 국화리의 대부분 지역이 국정동(國淨洞)으로 불렸는데,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엉뚱하게도 국화리(菊花里)가 되었다. 국정사 어귀의 마을을 국정(國淨)이라 했으며, 국정에서 동북쪽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국정고개, 국정 서쪽 청련사 쪽 고려산 골짜기를 국정골이라 했다. 그 국정골은 경치가 아름답다는 의미로 국정동천(國淨洞天)이라 부르기도 했다.
청련사를 나서며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굽어살펴달라고,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을 외며 기도했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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