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22대 정조대왕은 복숭아꽃에 효심을 담았다. 1795년 수원 화성행궁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면서 한지로 만든 복숭아꽃 3천송이를 잔치상에 올렸다. 보물 제1430호 ‘화성행행도 병풍(華城行幸圖 屛風)’ 중 ‘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가 그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복숭아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한을 위로하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극진한 효도였다.
오늘의 어버이날 꽃은 카네이션이다. 사회운동가 앤 리브스 자비스의 딸 애나가 1908년 어머니 추도식에서 500송이의 카네이션을 나눠준 데서 유래했다. 1914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국경일 ‘어머니의 날’로 지정했고, 카네이션은 감사와 존경의 상징이 됐다.
한국의 어버이날은 애초 ‘효도의 날’이 아닌 ‘기억의 날’로 시작됐다. 대한부인회는 독립운동과 민족교육에 헌신한 조신성을 기리고자 장례일인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불렀다. 1956년 국가기념일로 제정됐고, 1973년 ‘어버이날’로 확대됐다.
어버이날이 이어지는 사이 효도와 부양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25 한국복지패널 조사·분석 보고서’가 고민을 던진다. 부모 부양의 책임이 전적으로 자녀에게 있다는 의견에 동의한 응답은 20.6%에 그쳤다. 18년 전인 2007년 52.6%보다 절반 이하로 줄었다. 오죽하면 ‘마처세대’라는 자조 섞인 명칭이 등장했을까. 5060은 부모를 직접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정작 자녀에겐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다. 이들은 위로는 노부모, 아래로는 성인이 된 자녀를 챙기면서 정작 자신의 노후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실제로 65세 이상 고령자 가구의 37.8%, 213만명이 홀로 산다. 효심이 퇴색했다고 탓하기도 어렵다. 부양이 개인의 윤리에서 사회적 책임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 도맡았던 병원 동행, 요양 역할을 사회시스템이 대신해야 하는 세상이다. 자녀보다 돌봄 로봇이 말동무가 되어주고, AI가 안부 전화를 걸어준다. 문제는 기계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빈자리가 있다는 점이다. 카네이션과 선물보다 부모의 일상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정조는 3천송이의 복숭아꽃과 함께 어머니 곁에 있었다. 꽃의 숫자보다 함께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부모를 섬기는 자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경구를 되새겨야 할 이유다.
/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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