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아픔 아는 백령바다… 내 내면 모든 것의 출발점”

 

무섭거나 밝거나… 중의적 얼굴 기록

17일까지 인천 갤러리 벨라서 열려

갤러리 벨라 초대전 ‘태고적 해류는 이미 그 섬을 흐른다’의 최정숙 작가. 2026.5.7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갤러리 벨라 초대전 ‘태고적 해류는 이미 그 섬을 흐른다’의 최정숙 작가. 2026.5.7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분단의 상흔이 서린 백령도의 바다를 인천 신포동의 전시장에서 만나면 어떤 기분일까. 인천 중구 갤러리 벨라에서 열리고 있는 최정숙 작가(사진)의 초대전 ‘태고적 해류는 이미 그 섬을 흐른다’에서는 여러 표정의 백령도 바다와 만날 수 있다.

작가에게 백령도의 바다는 자신의 모든 것이 시작된 ‘시원(始原)’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 만난 바다는 풍경이 아니다. 작가가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탐구하고 들여다본 성찰의 결과물에 더 가깝다.

전시장 벽면을 채운 바다의 표정은 제각각이다. 어떤 바다는 어둡고 무서운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어떤 바다는 별빛이 쏟아지는 화사한 분위기의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해류에 몸이 깎이고 다듬어졌을 바위들은 짙은 해무에 조용한 낮은 목소리로 자신이 겪은 이야기들을 속삭이며 들려주는 듯하다.

그에게 백령도 바다는 중의적인 공간이다. 유년의 기억이 머무는 곳이자 부모님의 삶이 녹아든 숙명적인 장소다. 때로는 모든 것을 삼킬 듯한 공포로, 때로는 고립된 섬의 외로움으로 다가오지만, 결국은 하늘이 내린 축복과 은총으로 귀결된다.

전시 작품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캔버스 위에 도드라진 거친 질감의 ‘마띠에르’다. 최 작가는 인위적인 설계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밀하게 계산된 작업보다는 우연에 기대는 작업 방식을 택한다. 그는 캔버스에 색을 칠하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다분히 수행적인 과정 속에서 우연히 형성되는 두께에 더 마음이 끌리는 듯하다. 수만 년 세월이 켜켜이 쌓인 백령도의 지층과 닮아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제 작업은 이론적으로 계산된 수학이 아닙니다. 철저히 내 감정을 내 방식대로 이야기하는 것이죠. 의도하기보다는 마치 접신이 이뤄지듯, 자연스럽게 형태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칠하고 지우고 또 기다립니다.”

최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는, 무질서한 방식처럼 소개하지만, 오랜 시간과 경험이 바탕이 된 ‘우연적 결과물’이다. 재료의 농도와 물감을 찍어 바르는 손끝의 힘, 붓의 속도 등이 결과를 본능처럼 감지하고 근육을 통제한 우연의 결과다. 어떻게 보면 화면 속 바다는 무계획적 우연이 선물한 필연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반복된 붓질 끝에 바위와 바다 물결이 캔버스 위에 솟아오르면 “이제 됐구나” 하는 어느 순간과 만나게 된다고 한다. 캔버스에 솟아오른 바위와 물결은 작가의 내면의 바다가 투영된 찰나의 기록이다.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의 그다. 최 작가는 “여전히 그림은 내게 즐거운 놀이다. 놀이는 작가의 특권”이라며 웃었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백령도의 바다를 세계와 우주로 확장하는 시도를 한다. 그는 “내가 응시해온 인천과 백령도의 바다는 닫힌 곳이 아니었다”며 “지구 탄생 이래 억겁의 세월을 순환해온 해류는 인류의 생명을 잇고 나라는 존재를 빚어냈다. 바다는, 해류는 결국 내가 돌아가야 할 거대한 우주의 흐름”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는 오는 17일까지 이어진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