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에 있던 우리나라 HMM 운용 화물선 나무호의 화재 원인이 미상의 비행체 공격에 의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여전히 그곳에 발이 묶인 우리 선박과 선원들의 안전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나무호는 예인선에 이끌려 인근 두바이 수리 조선소에 접안했다. 선원들은 배에서 내려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수리가 끝나는 대로 전원이 다시 나무호에 오를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목숨을 건 승선 의지가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호르무즈 해협에는 나무호를 비롯한 우리나라 관련 선박 26척이 갇혀 있으며 외국 선박에 타고 있는 인원을 포함해 이곳의 한국인 선원은 총 160명이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전장의 한가운데 노출된 채로 덩그러니 움직이지도 못하는 선원들의 공포감은 그야말로 최악일 테다. 당해보지 않고서는 필설로 설명할 수조차 없으리라.
우리나라 외항선 운항의 대부가 인천에 있었다. 해옹(海翁) 배순태(1925~2017). 그의 아호부터가 고집쟁이 바다 사나이 냄새를 확 풍긴다. 인천 동구 화수부두에는 ‘DH’라는 이름의 아주 작은 조선소가 있다. 예인선을 주로 만든다. DH는 해옹이 설립한 여러 회사 중 하나인데 ‘동호(東湖)’의 영문 이니셜에서 따왔다. 동쪽 호수, 우리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동해를 호수쯤으로 여기는 바다 사나이의 커다란 배포를 보여주는 작명이다.
해옹은 우리나라 해양 관련 업계의 선구자라 아니할 수 없다. 경남 창원 출신인 그는 일제강점기 고등해원양성소에 입학하면서 바다 사나이의 길에 접어들었다. 범선 실습을 나갔다가 일본 해병단에 강제 입대해 어뢰정을 몰고 미군 함정을 들이받는 인간 어뢰 훈련을 해야 했다. 해옹은 출정, 그러니까 죽음을 며칠 앞두고 해방을 맞았다.
우리나라 최초로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등 외항선을 타고 세계를 일주한 첫 한국인인 그는 국내 1호 공인 도선사이기도 하다. 1959년 인천항 도선사로 취업하면서 인천과 인연을 맺었다. 평생을 바다와 함께하며 수많은 기록을 써 온 해옹은 후배 사랑도 대단해 모교 한국해양대학교에 막대한 규모의 사재를 출연하기도 했다. 국립인천해양박물관은 바다 사나이 배순태의 ‘도선사 수첩’을 ‘5월의 해양유물’로 선정했다. 그의 꺾일 줄 모르는 바다 사나이 정신과 한없는 후배 사랑이 호르무즈에 가 닿기를 기원한다.
/정진오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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