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목적 ‘약’ 악용… 양형 별도 반영 목소리
항불안제 처방 환자 줄고 처방량↑
‘오용’ 가중 요소로 규정 기준 없어
“타인에 영향 인지… 죄질 중하다”
정신질환 치료를 위해 처방받은 항불안제가 수개월 새 잇따라 ‘살인 도구’로 등장했다. 같은 계열 약물이 강력 범죄(5월11일자 7면 보도)에 쓰이면서 의사로부터 적법하게 처방받은 약을 범죄에 전용하는 행위를 더 엄하게 다뤄야 한다는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치료 목적의 보편적으로 쓰이는 약물인 만큼 처방 자체를 제한하기보다 이를 의도적으로 오용한 행위에 대한 법적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11일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의 ‘의료용 마약류 월간동향’(4월)에 따르면 항불안제 처방환자 수는 지난 2022년 641만명에서 2025년 592만명으로 줄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처방량은 91만8천630정에서 92만3천820정으로 오히려 늘었다. 처방받는 환자는 감소했지만 1인당 처방량은 증가한 셈인데, 다량의 약물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 것으로 분석된다.
항불안제 가운데 최근 강력 사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벤조디아제핀이다. 불안장애·공황장애·불면증 치료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알코올과 함께 복용하면 호흡 억제에 더해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서울 강북구 모텔에서 피의자 김소영은 해당 약물을 음료에 섞어 남성 3명에게 건넸고 이중 2명이 숨졌다. 최근 부천에서는 40대 여성과 20대 여성이 같은 계열 약물 60정을 가루로 만들어 소주 1.8ℓ 페트병에 녹인 뒤 냉장고에 넣어둔 혐의를 받는다. 40대 여성의 남편이 평소 혼자 술을 마신다는 점을 노린 계획 범행이었다.
현행법상 범행에 약물을 사용하면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가중 처벌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치료 목적으로 처방한 약을 범행 수단으로 이용한 경우 처방약 오용 자체를 가중 요소로 명확히 규정한 기준은 없다. 일각에서는 합법적 처방 경로로 다량의 약물을 확보해 범행에 활용했다면 계획성이 짙고 죄질이 더 무겁다는 점을 들어 양형에서 이를 별도로 반영해야 한다고 본다.
박호균 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대표변호사는 “복용 경험이 있는 이상 해당 약물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인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어 죄질이 중하다. 상습적으로 범죄에 활용하기 위해 처방을 받아온 것으로 판단된다면 향정신성의약품 소지 자체를 문제 삼아 추가로 처벌할 수 있다”며 “다만 일부 사건에서는 처방 이력이 있는 경우 범죄 목적이었다는 점을 피의자가 자백하지 않는 한 입증하기 쉽지 않은 것도 현실”이라고 짚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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