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문인 모임 ‘구인회’ 모티프
생명 잃어가는 천재 소설가 김해진 연기
“매 시즌 무언가 새로운 것 더할까 고민”
대표작 남기고 싶어하는 작가 심리 초점
“연구하고 표현하는 배우로 자리 지킬 것”
“시대와 세계를 관통하는 지점이 분명히 있는 작품이에요. 그래서 고전으로 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뮤지컬 ‘팬레터’의 지난 10년을 함께한 배우 이규형은 작품의 미래를 이렇게 그렸다. 과거 인간의 욕망과 본질에 대한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와 닿는 것처럼, 그에게는 예술가의 삶과 사랑 그 속에서 강렬하게 내비치는 감정들이 녹아있는 ‘팬레터’가 앞으로도 계속 관객들과 마주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팬레터는 1930년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김유정과 이상 등 당대 천재 문인들의 모임인 ‘구인회’에서 모티프를 얻어 상상력을 더한 작품이다. 천재 소설가 김해진과 그를 동경하는 작가 지망생 정세훈, 비밀에 싸인 천재 작가 히카루의 얽히고설킨 이야기가 문인들의 예술혼과 사랑에 담겨져 펼쳐진다. 이규형은 김해진 역을 맡아 팬레터의 초연부터 현재 오연 앵콜 무대까지 함께하며 또 하나의 작품 속 서사가 됐다.
이규형은 “한 인물, 한 작품을 10년 동안 한다는 게 흔치 않다. 재미없었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10년 전에는 텍스트만 본 것 같다. 이후 매 시즌을 지날 때마다 새로운 것을 뭘 더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며 “모티프 된 인물을 찾아보거나 과거의 역사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이번 시즌에는 새로운 배우들과 어떤 특별한 지점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래서일까, 이규형의 김해진은 시즌을 거듭하며 조금씩 주안점을 다르게 가져가기도 했다. 죽기 직전 세상에 쓸만한 작품을 남기겠다는 작가의 순간, 사랑에 목말라 그것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썼던 모습, 한 사람으로서 더 오래 살고 싶고 의미 있는 것을 남기고 싶은 마음 등 순간 순간 튀어나오는 김해진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결국 이 모든 것은 한 인물이 가진 모습이었다. 이규형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도 김해진이라는 인물이구나라는 것을 회를 거듭할수록 느꼈다. 인물이 부딪히며 가졌을 희노애락이 나에게 확신을 줬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해진이라는 천재 문인을 표현하면서도 이규형이 놓치지 않았던 것이 있다. 바로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문인으로서 이름 석자 빛날 수 있는 작품을 남기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초연 때부터 이규형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다. 자신이 쓴 글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감정과 진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스스로를 속일 수밖에 없었던 지점들은 김해진이 쓰던 작품의 끝을 맺을 수 있느냐 없느냐라는 상황과 이어지며 더 아프고 절실하다는 것이 이규형의 설명이다.
팬레터의 말미에는 ‘해진의 편지’가 흘러나온다. 편지는 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편지를 주고받는 각각의 인물에게 그 글귀들은 희망이 되기도 절망이 되기도 한다. 작가에게 생명줄과도 같았던 관계가 부서지고 깨지는 것이 두렵고 무서웠던 해진의 숨겨둔 마음 속 이야기가 편지로 전해지는 장면은 묵직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이규형은 “‘편지의 주인이 누구든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대목에서 결국 인물의 진심을 알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에 이르러 자신이 쓰던 작품의 마지막을 끝맺어줬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영화, 드라마 등 다방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이규형이지만 공연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매해 꾸준히 무대에 올라 관객들을 만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규형은 “많은 것이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이런 변곡점은 늘 있었던 것 같다”며 “살아있는 무대 예술이 더욱 귀해지고 가치가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껏 해오던 대로 연구하고 표현하는 배우로서 자리를 지키겠다”고 밝혔다.
뮤지컬 팬레터는 6월 7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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