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불빛 춘향제의 시작

태종대 유배 황희가 지은 곳

편액 83점… 문장가 유람코스

전통·서사 깃든 대한민국 보물

광한루원 안 삼신산에서 바라본 광한루 누각과 현판. /최철호 소장 제공
광한루원 안 삼신산에서 바라본 광한루 누각과 현판. /최철호 소장 제공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5월이면 남원은 꽃 천지다. 남원성에서 남원향교와 남원사직단 따라 걷는 길이 꽃길이다. 광한루와 오작교 주변도 모두 꽃밭이다. 요천 따라 청사초롱 불빛이 빛나면 춘향제(春香祭)다. 남원 춘향제는 벌써 100회를 향해 가고 있다. 춘향제는 일제강점기에도 한국전쟁에도 시민들과 함께 그 명맥을 지켰다. 판소리 고향답게 ‘춘향가’ 속 사랑가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고전소설 ‘춘향전’ 배경이 남원 광한루다.

태종대 유배온 황희는 1419년 남원에 광통루를 짓고, 한양에 가기를 기다렸다. 세종대 전라감사 정인지는 1444년 광통루에서 광한루로 이름을 바꾼다. 달나라 궁전 ‘광한청허루에서 광한루’를 찾았다. 남원부사 장의국은 1461년 요천강을 끌어와 은하수 같은 호수도 만들었다. 홍예문 4개를 이어 오작교(烏鵲橋)라 하였다. 광한루는 역사의 공간이자, 문화의 보고이며 생태의 전형이다. 광한루와 오작교 사이 3개 섬을 방장산·봉래산·영주산으로 삼신산도 만들었다.

광한루 현판은 조선 최고 문장가 신흠의 장남 신익성이 썼다. 광한루는 조선시대 유명한 인사들과 문장가의 유람코스였다. 죽기 전 모두 남원에 가고 싶어 했다. 광한루에 가면 흔적을 남겼다. 광한루 누각에 83점이 넘는 편액이 있다. 용성지에 실린 글을 합치면 200여 수 시문이 담겨 있다. 한시 문학을 한 공간에서 볼 수 있다. 광한루는 한시 문학의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대한민국 누각 중 광한루에 가장 많은 편액이 걸려 있다.

고전소설 춘향전과 판소리 춘향가 배경이 되는 남원 광한루. /최철호 소장 제공
고전소설 춘향전과 판소리 춘향가 배경이 되는 남원 광한루. /최철호 소장 제공

황희·정인지·강희맹·김시습·김종직·정철 등 조선 문장가들이 남원 광한루에 왔다. 하지만 정유재란 때 소실된 광한루를 인조대 신감이 1639년 복원하였다.

광한루와 오작교는 남원의 자랑이자, 대한민국 보물이다. 1855년 남원부사 이상억이 광한루 누각을 보수한 후 호남제일루(湖南第一樓)라는 현판도 썼다. 광한루 누각에 코끼리와 자라, 토끼를 만들어 걸었다. 신기한 풍경이다. 그 당시 코끼리가 남원에 있었다. 광한루와 광한루원은 대한민국 명승이다. 우주를 상징하여 만든 대표 누각과 누원이다. 광한루는 역사·문화·생태뿐 아니라 전통과 서사가 깃든 ‘대한민국 국보’로 드디어 인정받았다.

역사 속 광한루와 오작교에 얽힌 이야기가 춘향전과 춘향가에 있다.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춘향이와 춘향제도 이제 세계 속으로 나간다. 광한루에서 남원성 지나 교룡산성에 가면 별천지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5월 교룡산성은 당신을 기다린다. ‘남원산성 올라가 이화문전 바라보니,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 노랫가락에 발걸음도 가볍다. 천혜의 요새 교룡산성이 바로 남원산성이다. 백제시대 쌓은 산성이 천년 남원을 지켰다.

김시습의 최초 한문소설 만복사저포기 속 만복사지 석인상. /최철호 소장 제공
김시습의 최초 한문소설 만복사저포기 속 만복사지 석인상. /최철호 소장 제공

황희가 만든 광한루, 춘향가가 울리는 오작교, 여뀌꽃 피는 요천은 천년 남원의 상징이다. 또한 만복사는 김시습이 머물며 소설을 썼던 공간이다. 최초의 한문 소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가 만복사에서 탄생했다. 천년 남원은 광한루와 만복사지가 있는 역사 속 공간이다. 만복사지 당간지주, 만복사지 오층석탑과 석조대좌 그리고 석조여래입상이 만복사지에 ‘대한민국 보물’로 서 있다.

남원역에서 5분 거리에 만복사지가 있다. 광한루까지 10분이면 족하다. 역사 도시, 문화 도시, 생태 도시 남원.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