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축제(감독 임권택·1996)’ 속 장례식장은 요란하다. 노름판이 벌어지다가 고성이 오간다. 밤이 깊어갈수록 빈소는 왁자지껄하다. 취기에 젖은 새말아재가 삼경(三更)을 아뢰니 다함께 일어서 곡소리 한다. 언뜻 보면 상가(喪家)라기보다 동네 잔칫집에 가깝다. 그러나 그 소란은 죽음을 가볍게 여긴 결과는 아니었다. 유가족들이 슬픔에 잠기지 않도록 밤새 곁을 지키던 공동체의 방식이었다. 삶과 죽음, 눈물과 웃음이 한 공간에 뒤섞이던 집단적 위로의 문화였다.

조문객으로 북적이던 장례식장 풍경은 빠르게 달라졌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조문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고, 심야·새벽 조문은 민폐로 여겨진다. 3일장 대신 가족과 가까운 지인만 함께하는 ‘작은 장례’가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장례 절차를 하루 만에 마무리하는 ‘1일 장례’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조문객을 받지 않고 가족 중심으로 안치·입관·발인 등 최소한의 절차만 진행하는 ‘무빈소 장례’도 늘고 있다.

장례 간소화의 또다른 배경에는 달라진 가족 구조가 있다. 대가족과 동네 공동체는 해체됐고, 홀로 사는 인구는 늘어났다. 사돈의 팔촌 먼 친척과 이웃까지 총출동하던 고전적 장례 문화는 이제 현실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3일장을 치르는 데 들어가는 식대와 장례식장 사용료는 유족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인식, 형식보다 실용을 중시하는 세대 변화 역시 작은 장례 확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고인을 추모하는 방식도 ‘많은 사람’보다 ‘가까운 사람’ 중심으로 이동하는 셈이다.

걱정의 시선도 있다. 장례 절차가 지나치게 생략되면서 죽음을 애도하고 기억하는 마음마저 축소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장례는 단순히 고인을 떠나보내는 의식이 아니라 남겨진 이들이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너무 빠르고 조용한 이별은 슬픔을 충분히 나누지 못한 채 개개인의 상처로 각인될 수 있다.

하지만 작은 장례라고 해서 고인을 배웅하는 마음까지 작아지진 않는다. 소란이 걷힌 자리에서 가족들은 비로소 서로의 슬픔을 마주할 수 있다. 조문객 응대에 몸과 마음이 소진되는 대신 고인에게 오롯이 집중하고 삶을 추억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빈소의 크기가 아니다. 소중한 이들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얼마나 진심으로 배웅하느냐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