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 개인전 ‘사유’…학고재 갤러리에서 5월20일부터 6월20일까지
사회 불의와 ‘싸우는’ 그림에서 내면으로… 리얼리즘의 철학적 확장
반가사유상서 얻은 영감… 팬데믹 단절·공포 거치며 ‘인간과 우주의 보편성’ 탐구
캄캄한 암흑 배경으로 여성과 불상이 나란히 결가부좌를 하고 명상을 하고 있다. 화면 좌측과 우측의 불상이 거의 정확한 대칭을 이루는데, 젊은 여성의 고운 피부와 무쇠 덩어리 불상의 금속성 차가운 질감은 또 대조적이다. 여성과 불상의 머리 위로 에너지를 뿜어내며 활활 타오르는 불꽃과 이들의 차분한 표정에도 시선이 쏠린다. 지난 50년 가까이 농민 화가, 민중미술 화가, 극사실주의 화가, 현실주의 화가 등의 수식어로 설명되어온 이종구 화백의 최근작인 가로세로 1.8m 크기의 작품 ‘사유_무무명’에서 보여진 장면이다.
20일 이종구(1954~)의 개인전 ‘사유(Pensive):思惟’가 열리고 있는 서울 학고재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가 가장 처음 마주친 작품이 ‘사유_무무명’이다. 이 화백은 자신의 작품 앞에서 “굉장히 파격적이지 않느냐”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화면 속 여성의 신분을 지우려고 옷을 벗겨냈어요. 국적, 민족, 직업, 신분 이런 것들을 다 없애려고 했어요. 그래서 원초적 알몸을 그린 겁니다. 여성은 중생(衆生)을, 불상은 부처의 의미로 화면에 사용됐어요. 머리 위의 불꽃은 번뇌(煩惱)입니다. 물론 중생의 번뇌와 번뇌를 태워버리는 부처의 번뇌는 다르겠지만요…(중략)…중생과 부처는 결국 둘이 아닌 겁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국립중앙박물관의 국보 반가사유상을 그림 속으로 끌어들인 ‘사유(思惟)’와 ‘불이(不二)’ 연작이다. 이종구 화백은 팬데믹 기간 일상의 단절과 폐쇄,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며 ‘사유’ 연작을 시작했다. 과거부터 그의 창작 욕구를 자극한 반가사유상이 전시된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도 드나들며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이어졌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들은 2021년부터 올해까지의 작품이다. 이종구 화백은 정년 퇴임 이후 인천문화재단 대표를 맡으며 지역에서 헌신하는 시기 개인적 창작 활동을 중단한 바 있는데, 대표직을 중도 하차하며 조금 더 일찍 이 화백의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이번 전시는 2018년 학고재에서의 개인전 이후 8년 만에 열리는 대규모 개인전이다.
불이 연작은 반가사유상과 인간 모습을 두 개의 화면에 각각 담아내며 하나의 작품으로 연결한다. 이 화백은 “두 개의 화면은 둘이 아닌 하나, 즉 불이의 세계였다”고 말한다.
김준기 미술평론가의 표현처럼 ‘살아 펄펄 뛰는 현실의 지평에서 날카롭게 대립하던 리얼리스트’로 기억되는 이종구 화백이다. 이번 전시에서 이종구는 인간 사회와 우주의 보편성이라는 주제로 확실하게 방향을 전환한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민중미술 작가로서 그동안 싸우는 그림을 그려왔어요. 우리 사회의 불의와 비민주적인 것들, 현장을 주로 기록했는데, 이제 내면화하고 있는 거죠. 그동안의 리얼리즘을 내면적인 철학으로 옮겨 세상을 그려봐야겠다 해서 시작했습니다. 더 죽이려고, 더 차지하려고, 더 뺏으려고…지금 인류가 지키려고 노력하고 살았던 도덕 기준이 무너지고 있는 세상입니다. 약육강식의 세상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철학적 사유가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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