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맺기에는 헐거워진 집중력
나는 새로운 나에게 적응하는중
향하기만 한다면 어쨌든 해낸다
초속 오센티미터 속도로 닿을것
하루 종일 일할 생각으로 오전에 일찍 일어났다. 최근에 시작한 러닝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돌아와 샤워를 한다. 식사를 차려서 맛있게 먹는다. 여기저기 어질러진 물건들을 제자리에 옮겨놓고 청소를 한다. 다시 출출해져서 가벼운 간식을 먹는다. 작업물을 프린트하고 가방을 챙긴다. 자전거 열쇠를 챙겨 나와 이십분 정도 이동한다. 도서관 의자에 앉아 시계를 보자 오후 다섯시다. 이럴 수가 있나! 오전부터 게으름을 부리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오후가 저물어갈 판이다. 시간에도 누수가 있어 어딘가 지독하게 새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이날은 좀 더 극단적이었지만, 요즘 들어 이런 리듬이 낯설지 않다. 만약에 내가 인간이 아니라 지렁이라면, 지렁이 중에서도 가장 느린 지렁이일거라는 생각이 열두 번도 더 든다. 이동은 고사하고 꿈틀거림 몇 번에 시간이 다 지나가버리니까.
작년부터 건강상의 이유로 반드시 먹어야 하는 약이 있다. 이 약은 부작용이 다양한데 그 중 하나가 주의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확실히 약물의 영향 하에 놓인 것 같다. 머리는 순식간에 집중력을 잃고 딴 생각에 빠져드니까. 앞선 생각으로 시작된 행동을 마무리하지 않은 채 다른 일을 벌이거나 그마저 다음단계로 이어붙이지 못한다. 예를 들어 목이 싸늘해서 손수건을 둘러야겠다고 생각해 책상에서 일어난다고 치자. 안방으로 걸어가는 몇 걸음 사이 환기시켜 놓은 창문이 눈에 들어와 닫아 걸고, 입을 벌린 채 누워있는 책을 들어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방의 복판에서 여기 왜 왔더라, 갸우뚱하다가 때마침 눈에 들어온 꼬마 조명을 보고 충전해둬야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다시 서재로 돌아오는 내 손에는 손수건이 아니라 조명이 들려있다. 요사이 이런 순간은 아주 많다.
이십분도 가지 않는 이 집중력의 스위치를 대체 어쩌면 좋단 말인가? 시도 때도 없이 시동이 꺼지는 차를 몰고 몇 킬로나 나아갈 수 있을까? 일상생활은 괜찮지만 소설 쓰기는 다르다. 소설은 머릿속 가장 안쪽 서랍을 열어 오랫동안 들여다봐야 하는데 집중력 없이는 한 줄도 제대로 해낼 수가 없다. 이 와중에 아이디어는 많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아이디어가 고갈되거나 쓰기 노동에 염증이 나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게 아니라 바람개비마냥 팔랑거려서 온갖 신호에 반응하니 문제다.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고 시간을 잡아먹는 도둑으로는 유튜브가 일등이다. 어제 들은 유튜브 강연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일년에 사계절이 있는 것처럼 하루에도 봄여름가을겨울이 있다고. 절기마다 잘 밟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이다.
나에게 대입해보니 하루 중 봄이라고 할 수 있는 아침은 자신 있게 시작하는 것 같다. 늦지 않게 일어나 생전 처음 운동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여름까지는 잘 흘러간다. 문제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인데, 즉 가장 작업에 몰두하고 열매를 맺어야 하는 시기인데 이때가 가장 힘들다. 열매를 맺기에는 주의력 밸브가 너무 헐거워져서 생각이 새어버리니 말이다.
‘시동이 자주 꺼지면 어때, 재시동하면 되지’.
요즘에는 이렇게 마음을 바꿔 먹고 있다. 자주 시작하기, 새로 시작하기, 느려도 실망하지 않기. 나는 새로운 나에게 적응하는 중이다. 그러다보니 새로 발견하는 것도 있다. 아무리 자주 시동을 꺼뜨려 먹어도, 그래서 몇 배는 힘들고 실망스러워도, 가려는 방향으로 향하기만 하면 어쨌거나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효율이 떨어지는 것이지, 글을 쓸 수 없는 것은 아니다’라는 결론이 나오자 불안이 조금 가시고 용기가 났다. 이 짧은 글을 쓰는 동안에도 휴지기가 두 번이나 있었다. 예전에는 한 호흡으로 썼는데 말이다. 시동이 두 번 꺼지기는 했어도, 그래서 담당자에게 죄송하다는 인사를 덧붙이긴 했어도, 이 글 역시 마침표를 찍고 당신의 눈앞에 가 닿을 것이다. 그러니 초속 오센티미터의 속도로라도 꿈틀거릴 수밖에.
/김성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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