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은 용도에 따라 다른 색깔의 번호판을 단다. 가장 흔한 흰색은 비사업용 일반 차량, 노란색은 영업용 택시·버스·화물자동차, 하늘색은 수소·전기차 등 친환경 차량, 주황색은 덤프트럭·굴삭기 같은 영업용 중장비, 감청색은 외교 차량이다. 2024년 1월, 연두색이 더해졌다. 취득가 8천만원 이상의 법인 승용차에 부착이 의무화됐다. 법인 명의 고가 차량의 사적 유용을 사회적 시선으로 억누르겠다는 당시 윤석열 정부의 의도였다. 회삿돈으로 슈퍼카를 굴리는 사주 일가의 행태를 도로 위에 공개하겠다는 발상이었다.

출발은 제법 억제력이 작동하는 듯 보였다. 도입 첫 해 1억원 이상 법인 차량 신규 등록은 3만3천960대로 전년 5만1천542대보다 34.1% 급감했다. 그러나 사람의 적응력은 법의 예측력을 앞선다. 중고차 시장에는 ‘7천999만원짜리 외제차’ 매물이 줄을 섰다. 8천만원 기준을 교묘히 비껴가는 다운계약서 작성과 차대번호 조작 같은 편법이 횡행했다. 그러다 더 기묘한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지난해에는 법인 차량이 3만9천429대로 되레 증가했다. 어느 틈에 연두색 번호판을 단 슈퍼카는 ‘법인을 거느린 자산가의 훈장’처럼 소비되기 시작한 탓이다. 탈세 억제 장치가 재력 과시의 도구로 변질됐다.

법인이 수억 원짜리 슈퍼카를 회사 명의로 구입해 사주 가족의 골프와 유흥에 굴리면서 그 비용 전체를 경비로 처리하는 행태는 오랜 관행이 됐다. 차량 한 대당 연간 1천500만원까지 경비 처리가 가능하고, 유류비와 보험료까지 공제되니 절세 효과는 상당하다. 경비 처리된 금액만큼 과세표준이 줄고 법인세가 감소하니, 그 감면분은 고스란히 사회 전체가 나눠 떠안는 구조다. 원천징수 1원까지 빠짐없이 납부하는 ‘유리지갑’ 봉급생활자들의 분노 버튼을 누르기에 충분하다.

법인 차량의 사적 유용은 기업 전반의 탈세 위험을 알리는 징후다. 회삿돈과 개인 돈의 경계가 흐려지면 접대비, 허위 거래, 차명 자산 같은 왜곡이 동시에 벌어지기 마련이다. 이는 공동체의 자원을 사유화하는 구조적 약탈이자, ‘플렉스’라는 이름으로 미화된 탈세의 민낯이다. 조세정의를 비웃는 탈세가 경영 기술처럼 포장되고 묵인되는 한, 연두색 번호판은 ‘꼼수의 가면’을 벗지 않을 테다. 법인들은 법이 부여한 법인격의 무게와 책임을 되돌아봐야 한다. 연두색 번호판에 법의 빈틈을 허용하면 안 된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