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해역, 전국 추젓 70~80% 생산

담수 유입돼 영양염류·플랑크톤 풍부

1990년대 들어 형성된 젓갈시장

젓새우 어업 쇠퇴해 가던 무렵

관광객 대상 ‘드럼통 노점’으로 시작

지난해 9월 강화군 외포리 경인북부수협 새우젓 위판장에서 추젓 경매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경인일보DB
지난해 9월 강화군 외포리 경인북부수협 새우젓 위판장에서 추젓 경매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경인일보DB

김치는 이제 전 세계 사람들이 즐기는 한국 음식이다. 다른 나라 언어로는 설명하기도 어려운 김치의 ‘깊은 맛’과 ‘감칠맛’은 다른 나라에서 흉내를 내기 어렵다. 무엇보다 재료가 다르기 때문이다. 김치를 담글 때 조미료로 주로 쓰는 새우젓 등 젓갈은 다른 나라에 없는 우리나라 고유의 발효 식품이다. 새우젓을 빼면 김치 맛이 나지 않는다.

새우젓의 주재료인 ‘추젓’(젓새우)의 전국 생산량 70~80%는 인천 강화도 해역에서 잡힌다.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대표적 K-푸드 김치는 인천이 주는 소중한 바다 자원인 새우젓이 있기에 제맛을 찾을 수 있다. 강화의 새우젓을 맛볼 수 있는 곳은 강화군 외포항 젓갈시장(젓갈수산물 직판장)이다.

지난 20일 오전에 찾은 외포항 젓갈시장에는 선박 이름을 딴 점포 17곳이 성업 중이었다. 젓새우 산지라고 해서 추젓만 파는 것은 아니다. 명란젓, 창난젓, 오징어젓, 밴댕이젓, 황석어젓, 갈치속젓, 꼴뚜기젓, 낙지젓, 조개젓, 멸치액젓, 까나리액젓 등 온갖 종류의 젓갈을 팔고 있었다. 조개류나 생선도 좌판에 올려져 있다.

외포항 젓갈시장의 주인공은 단연 추젓이다. 점포 한가운데 큼지막한 통에 한가득 담겨 있었다. 이쑤시개로 추젓 속 자그마한 젓새우 하나를 찍어 입안에 넣었더니 특유의 감칠맛이 입안 전체를 감싸고 돌았다. 물 한 방울도 쓰지 않고 강화산 젓새우 75%와 소금 25%로만 만들어진 젓갈인데 육즙이 흘러넘쳤다.

시장을 운영하는 경인북부수산업협동조합 내가어촌계 박용오 계장은 “젓새우는 잡는 시기에 따라 오젓(봄), 육젓(여름), 동백하(겨울)로 불리고, 가을(9~11월)에 잡는 것이 추젓인데, 김장철 김장에 쓰이는 새우젓이 바로 추젓”이라며 “추젓이 나기 시작하면 유명 브랜드 김치 공장들부터 물량을 확보하려고 난리가 난다”고 말했다.

박 계장의 말처럼 김장철 외포항 젓갈시장으로 오면 얼마나 문전성시인지 실감할 수 있다.

강화군 외포항 젓갈시장의 한 점포에서 팔고 있는 추젓. 2026.5.20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강화군 외포항 젓갈시장의 한 점포에서 팔고 있는 추젓. 2026.5.20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 젓새우 최대 산지 강화 앞바다

강화도 앞바다는 전남 신안, 영광과 함께 젓새우의 최대 산지로 꼽힌다. 정연학(국립민속박물관 전 민속연구과장) 비교민속학회장이 쓴 ‘인천 물고기 로드’(보고사·2026)에 따르면, 강화도 해역은 한강과 임진강의 담수가 유입되는 ‘기수역’으로, 육상에서 공급되는 무기 영양염류와 식물성 플랑크톤이 풍부하다. 드넓은 강화 갯벌은 젓새우의 먹이인 유기물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저장고 역할을 한다. 강화 연안이 다른 지역보다 젓새우가 서식하기 좋은 조건을 갖춘 이유다.

젓새우는 음력 3월부터 깊은 바다로 갔다가 8월께 연안으로 회유해 산란하는 습성이 있다. 어민들은 가을철 산란을 마친 젓새우를 잡아 염장하고 있다. 어민들은 1960년대 초반까지 강화도 앞바다에서 조기, 민어, 농어 등을 잡아 어획고를 올렸다. 그러나 남북 대치 상황으로 어로저지선이 점차 남하하고 어장은 축소되면서 안보적 제약과 어족 자원 고갈 등으로 젓새우잡이로 전업하는 어민들이 많아졌다. 이때부터 강화도 연안은 젓새우잡이의 중심 어장이 됐다.

강화군 화도면 내리 후포항과 석모도 사이 연안에서 젓새우잡이 배들이 조업을 하고 있다. /경인일보DB
강화군 화도면 내리 후포항과 석모도 사이 연안에서 젓새우잡이 배들이 조업을 하고 있다. /경인일보DB

강화도 젓새우잡이의 호황기는 길지 않았다. 1970~1980년대 한강과 임진강 오염에 따른 강 하류 어장의 황폐화로 인해 젓새우 어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1980년부터 젓새우잡이 배를 탄 박용오 계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본격적인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한강 물이 썩었어요. 그땐 공장에서 오폐수를 무단으로 버리고 그랬잖아요. 1980년대에는 강화에서 젓새우가 안 잡혀 신안까지 내려갔어요. 강화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처음으로 젓새우잡이로 돈을 벌기 시작했어요. 1988년 서울올림픽 전후로 한강과 임진강 수질이 개선되기 시작했거든요.”

정연학 회장의 ‘인천 물고기 로드’를 보면, 어민들은 강화도 어장에서 젓새우가 잡히지 않자 전남 섬 지역으로 내려갔다. 강화도 젓새우 어민들은 설 명절을 보내자마자 신안과 목포 지역으로 떠나 연말까지 머물렀다. 배에는 쌀 10가마, 소금 150가마, 빈 드럼통 50개, 김치 등 밑반찬을 실었으며, 식량을 실은 운반선이 정기적으로 전남 어장을 찾아 보급하는 방식으로 ‘원정 어업’을 했다고 한다. 강화도 어민들은 전남 어민들에게 어로 기술도 전파했다.

정 회장은 앞선 책에서 “흥미로운 점은 1990년대 초까지 현지 주민들과의 마찰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라며 “당시 전라도 어민들은 젓새우 어법에 생소했을 뿐만 아니라, 김장 시 새우젓 대신 멸치젓을 사용했기에 외지 어민들의 젓새우 조업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 노점에서 시작된 강화 젓갈시장

강화군 외포항 젓갈시장의 한 점포에서 팔고 있는 다양한 젓갈. 2026.5.20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강화군 외포항 젓갈시장의 한 점포에서 팔고 있는 다양한 젓갈. 2026.5.20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강화도 젓새우잡이는 2000년대 들어서부터 수온 변화와 어업 현대화 등으로 다시 왕성해졌다. 강화도 시인 함민복이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시집 ‘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2022년 개정판)의 말미에 실은 산문에서는 새우잡이배 위에서 강화 앞바다의 밤 풍경을 보며 생각하는 장면이 나온다.

‘수면 위에 누운 달빛이 출렁거리는 소리. 달빛이 우는 소리를 오랫동안 들었습니다. 물결 위에서, 물을 끌어당겼다가 놓았다가 반복하는 달의 힘 위에 올라앉아, 달의 힘을 느끼며, 달빛을 타며……, 내륙의 한복판 중원 땅에서 태어나 바다 한가운데까지 오게 된 내 지나온 길들을 낚싯줄처럼 풀어도 보고 그물처럼 엮어도 보았습니다.’ (시집 ‘말랑말랑한 힘’ 130쪽)

외포항 젓갈시장은 1990년대 들어 형성되기 시작했다. 젓새우가 잘 잡힐 때가 아니라 오히려 외포항에서의 젓새우 어업이 쇠퇴한 시기 생겨난 것이다. 외포항에서 배를 타고 석모도와 보문사를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외포항 인근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건어물, 새우젓 등을 파는 노점상들도 늘어났다. 이들은 드럼통 위에 물건을 올려놓아 ‘드럼깡’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노점상들은 1994년부터 재래시장으로 개조된 물양장에 입주했다.

2004년 냉장시설 등을 갖춘 현대식 수산시장으로 전환했다. 이때부터 해마다 10월이면 ‘강화도 새우젓 축제’를 열고 있다. 강화 새우젓 축제에 가면 김치와 새우젓을 직접 담글 수도 있고, 여느 축제처럼 유명 가수 공연도 즐길 수 있다.

박용오 경인북부수산업 협동조합 내가어촌계장.
박용오 경인북부수산업 협동조합 내가어촌계장.

외포항 젓갈시장은 2020년 3월 화재로 상당수 점포가 전소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고,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며 침체기를 겪기도 했다.

새우젓 축제를 만들기도 한 박용오 계장은 “충남 홍성 광천과 논산 강경에서도 젓갈 축제를 개최하고 있지만, 새우젓의 고장은 산지인 강화인데, 그동안 인지도가 낮았다”며 “우여곡절도 많은 강화 새우젓을 우리 지역 사람들부터 많이 찾고 애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인천시는 지난해 말 역사성과 지역성이 반영된 ‘인천지역유산’ 17개를 선정해 발표했다. 경인일보는 ‘인천역’을 시작으로 ‘강화 외포리 젓갈시장과 새우젓 문화’까지 차례로 인천지역유산을 소개했다. ‘짜장면’ ‘연안부두’(노래) ‘배다리 헌책방 골목’ ‘부평시장’ 등 유·무형의 지역유산들이 다소 익숙지 모르지만, ‘알고 보면 달리 보이는’ 기획 취지대로 익숙한 지역유산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하고자 했다. 독자들이 더 많이 알게 된 인천지역유산을 더 많이 찾고 즐길 수 있길 기대하며 기획 시리즈 연재를 마무리한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