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푸른인천글쓰기 수상작

그놈의 둘째 소리. 8살 딸아이를 데리고 다니다 보면 “몇 살이야?” “아이고 예쁘다.” 이런 의례적인 인사 다음에 따라붙는 말이 있다. “둘째 봐야지.” 요즘엔 남의 집 자녀 계획에 참견하는 것이 매너가 아니라는 인식이 퍼진 덕분에 덜한 편이라지만, 여전히 오지랖 넓은 사람들을 종종 마주친다. “맞벌이하느라 봐줄 사람 찾기가 어려워서요.” “하나 키우기도 힘에 부쳐서요.” 이런 말로 그 상황을 넘어가곤 하지만.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은 세상에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내놓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나만의 것일까.

기후학자들은 2세를 낳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대재앙은 돌이키기 힘든 수준으로 진행되었고, 인류의 멸종을 향후 백 년 내에 일어날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녀 계획을 못할 수밖에.

기억할 수 있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들으며 자라왔고, 기후 위기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것은 너무 익숙한 기정사실이라 새삼스럽게 받아들여본 적이 없었는데. 첫째를 낳고 나니, 내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를 내어놓고 나니, 나는 아이가 마주할 세상이 비로소 두려워졌다.

“세상이 망할까 봐 아이를 못 낳겠어요.”라고 대답한다면 둘째를 권한 사람들은 나를 어떤 눈길로 쳐다볼까. 편집증과 피해 망상에 사로잡힌 비정상인 취급하지 않을까. 그런데 내 눈엔 오늘의 온화한 햇빛, 쾌적한 미풍, 잘 먹고 잘 마시고 그 쓰레기들을 슬쩍 버리고 하하 호호 웃으며 공원을 나서는 사람들이야말로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평화로운 내일을 맞기 위한 노력은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당연히 내일도 일 년 후에도 십 년 후에도 온화한 사계절이 있기를, 깨끗한 물과 공기를 마시기를 기대하는.

4월의 좋은 날. 볕과 바람이 적당한 야외에서 실컷 뛰놀고 양껏 먹은 다음 그늘막 아래 돗자리를 깔고 낮잠을 자는 아이를 바라본다. 나는 당연하게 받은 자연의 선물을 아이는 못 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옥죄어온다. 켜켜이 쌓이는 답답함을 어쩌지 못하고 나는 겨우 몸을 일으켜 남이 버리고 간 병을 줍고, 분리수거함에 잘못 버려진 것들을 모을 따름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아이.” 그 아름다운 존재들이 자랄 세상을 장밋빛 희망에 찬 시선으로 바라볼 날이 내게 올까. 세상이 너무 아름답고 살만하여 나도, 기후학자들도 기꺼이 2세를 낳아 기를 만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