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이 된 피해자들 “미군, 진심으로 사과하길”

 

2022년 대법 ‘정부 책임 인정’ 이후

부평 ‘애스컴시티’ 미군 책임 규명

강제 동원 후 무차별 페니실린 주입

심각한 후유증과 사망에 이르기도

원고측 “생존자 회복·정의 실현을”

지난 29일 오후 2시30분께 주한미군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가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군 위안부들에 대한 주한미군의 공식적인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2026.5.29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
지난 29일 오후 2시30분께 주한미군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가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군 위안부들에 대한 주한미군의 공식적인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2026.5.29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

“미군 부대의 잘못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도록, 그들이 우리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지난달 29일 오후 4시께 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첫 재판이 열린 법정에서 백발의 한 피해 여성은 떨리는 목소리로 재판부에 호소했다. 그는 “16살에 (미군 부대) 기지촌에 인신매매돼 미군을 상대하면서 사람대접도 받지 못하며 살았다”며 “미군으로부터 ‘컨택’(성병 원인자로 지목 당함)돼 성병 관리소로 끌려가 무차별적인 페니실린 주사를 맞았다. 그리고 또 부대 안으로 끌려가 미군을 상대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부장판사·박정호) 심리로 열린 이 재판에 참석한 피해 여성들은 재판 내내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서로 손을 맞잡은 채 탄식하기도 했다.

미군 위안부 피해자 117명은 한국 정부와 주한미군의 조직적인 성매매 방관·조장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했다. 2022년 대법원 판결로 한국 정부의 책임이 인정된 것에 이어 주한미군에게도 그 책임을 묻는 취지다. 한미군지위협정(SOFA)과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공무집행 중인 미군 등 법률상 책임을 져야 하는 사고에 대해선 한국 정부가 먼저 우선 배상 책임을 지고 미군 측에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1950년부터 전국 각지의 주한미군 기지촌에서 여성들은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미군을 상대로 한 성매매에 동원됐다. 인천 부평 일대에 자리잡은 대규모 미군 기지 ‘애스컴시티(ASCOM city)’도 마찬가지였다.

원고 측에 제출한 소장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애스컴시티에서 미군 위안부로 동원됐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문건이 포함됐다. 1973년 3월, 기지촌에 있는 클럽 주인들이 모인 단체 ‘한국관광휴양업협회’가 당시 한국 외교부·주한미군사령부의 양자 협의체였던 ‘군민관계 분과위원회’에 보낸 건의서에는 “동두천과 부평지역 미군 부대에서 매일 저녁 한국인 윤락여성 200여명을 버스 또는 도보로 영내 클럽에 유치하고 있다”며 이를 시정조치해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소장에는 특히 애스컴시티가 미군으로부터 성병에 걸렸다고 지목당한 여성들이 전국 각지에서 강제로 끌려온 장소였다는 사실도 기재됐다.

주한미군은 성병에 걸렸다고 의심되는 여성들을 강제로 부대 내 성병 관리소에 감금시켰다. 여성에 대한 성병 검사도 생략한 채 과도하게 페니실린을 투여했고, 여성들은 심각한 후유증을 앓거나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

원고 측을 대리하는 이주민센터 ‘친구’ 정효주 변호사는 “이제는 법원이 과거 국가와 미군이 자행한 불법 행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생존자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법적 정의를 실현해 달라”며 “고령의 원고들이 국가 차원의 진정한 사과와 실질적인 피해 복구를 이룰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주한미군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는 첫 재판이 열린 당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한미군은 기지촌 성착취 구조를 형성하고 유지한 책임을 인정하라”며 “피해자에게 공식 사과하고, 정당한 배상과 재발 방지 조치를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