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됨이 옳은 것을 이기는 때
우리가 사는 지금 가리키는 말
기표된 투표용지가 돌아다니고
부실 넘어선 것 아니고 무엇일까
백신애라는 여성 작가가 있다. 1908년에 나서 1939년에 세상을 떠났다. 요절이다.
그가 쓴 소설들을 보면 재능 있는 작가의 단명이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한다.
이 작가의 단편소설 중에 ‘혼명(混冥)에서’라는 것이 있다. 한자가 쉽지 않고 뜻이 오묘하다. 하늘과 땅이 나뉘기 전, 음양이 갈라지기 전, 명암·형체·언어의 구분 이전의 상태를 가리킨다. 혼돈 속의 심연 같지만 어지럽고 혼탁하다는 의미는 아닌 것도 같다.
비슷한 형태를 가진 한자어가 혼명(昏冥)이다. 어두울 혼, 해가 저물어 간 상태를 가리키는 말에, 어두울 명, 깊고 아득하여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빛이 사라지고 경계와 분별까지 흐려진 깊은 암흑을 가리키는 상태다. 황혼과 밤이 겹친 듯한 어둠이요, 인간의 인식이 잘 닿지 않는 상태요, 혼돈과 무지와 어둠이 뒤얽힌 것이다.
불교에서 중생이 혼명에 빠졌다고 하면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무명, 곧 진리를 보지 못하는 정신적 어둠을 가리키고 문학에서 천지가 혼명하다고 하면 폭풍·전란 시대의 혼탁함을 의미한다.
서두가 길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가리켜 바로 혼명하다고 말한다.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없는 상태, 이를 넘어서 그릇됨이 옳은 것을 이기고, 옳음이 다수임에 의해 입증될 수 있다고 믿고, 그래서 세력을 지어 올바름에 대항하고 올바름을 짓밟고 올바름의 표정을 짓고 웃는 때를 가리켜 혼명하다고 말한다.
옛날 그리스 시대에 디오게네스가 있어 대낮에 등불을 켜고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지 않던가? 왜 대낮에 등불을 켰던가? 대낮이 다만 햇빛이 비칠 뿐이요, 인간 정신이 무명 속에 들어 있고, 사회가 부정의와 위선에 차 있고, 진리는 어둠 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어 어둡다 했던 것이 아니던가? 그의 등불은 진리의 빛을 찾는 등불이요, 참된 인간을 찾는 등불이요, 혼탁하고 어두운 시대를 꾸짖는 등불이었던 것이리라.
일제강점기에 작가 채만식 소설 ‘소망(少妄)’을 보면 글자 그대로 아직 늙지도 않아서 망령이 든 전직기자가 나온다. 한여름 팔월 뙤약볕이 쨍쨍 내려쪼이는데 이 남자는 동복, 그러니까 겨울옷을 입고 광화문 앞에 나가 춥다고 한 것이다. 일제가 광기를 부리는 말기적 소용돌이 속을 버텨나가야 했던 채만식은 한여름을 한겨울처럼 춥고 무섭게 여길 수밖에 없었고, 그 위기 의식을 소설적 비유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
세상이 너무 힘들고 어두우면 직설로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없는 것을, 아직은 우리 사는 세상이 어둠의 심연의 맨 밑자락은 아닐 수도 있겠다. 그런데도 필자는 이 시대를 어떻게 형용해야 할까 할 때 ‘혼명’ 두 글자 외에 적실한 말을 떠올릴 수 없었다.
우리는 공명정대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올바른 것이 중시되고 내가 따라가지는 못해도 올바르고 훌륭한 사람들이 세상을 끌어가고 사람들끼리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민주주의, 민주주의 말을 하지만 민주주의란 사람들끼리 서로 아끼고 나와 마찬가지로 남도 소중하다는 원리를 지켜나가는 것이 민주주의 세상의 바탕일 것이다.
선거가 벌써 사전선거라는 것이 끝나고 본선거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선거 이야기를 하면 세상은 더 혼명하다고밖에는 할 수 없는 것 같다.
한쪽에서는 선거에 부정이 있다 하고 부정선거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단지 부실할 뿐이라고 한다. 유튜브를 보면 도처에 부실이 넘쳐나는데, 기표된 투표용지가 있어서는 안될 곳에 나타나고 한꺼번에 여러 장이 하나로 접혀 돌아다니고 한 시간 전에 기표한 사람이 또 나타나 투표를 하겠다고도 하니, 이것은 부실을 넘어선 것이 아니고 무엇이라 할까. 그래도 모든 것이 분명치 않고 분간할 수 없는 어둠에 사로잡혀 있는 것. 이를 가리켜 혼명이라 한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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