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원도 평범한 민간인… 범죄자 오해 풀어달라”
유해발굴·명예회복 진화위 권고에도
국가가 암매장한 4명 못찾아 가슴저려
“위패라도 봉안할 수 있게 조치” 호소
‘너무나도 억울합니다. (중략) 만 3년6개월 동안 추우나 더우나 쌓은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이 아까우며, 김일성의 목을 베지 못하고 죽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바다 한복판 섬에서 부모를 제대로 부르지 못하고 (중략) 봉급도 타지 못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동료들이 죽어간 것도 이 때문입니다’.
재판 기록에 남은 고(故) 임성빈씨 유언 일부다. 그는 1971년 발생한 ‘실미도 사건’에서 살아남은 공작원 4명 중 1명으로, 1972년 3월 사형당했다. 그의 유언서와 조서에는 공작원들이 국가의 뜻으로 오로지 북한 침투 작전을 목표로 훈련받았고, 기약 없는 작전과 비인격적 대우로 인해 사건이 일어났음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들이 담겼다.
고 임성빈씨 동생 임충빈(69) 실미도희생자유족회 회장은 “사건 발생 후 국가는 공작원들이 간첩 특수 범죄자라고 발표했다”며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할) 자료는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이어 “억울하게 사형시킨 4명의 유해는 국가가 암매장해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벽제시립묘지에서 5일간 진행된 발굴 작업에도 유해가 나오지 않았다”며 “저리도록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 결과 당시 공군 측이 민간인을 속여 공작원으로 불법 모집한 점, 실미도 부대가 노출될까봐 살아남은 공작원들이 상고를 포기하도록 회유한 점 등이 확인됐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22년 11월 국방부에 인권침해 사실에 대해 국가가 사과하고 공작원 유해 발굴 및 명예 회복에 힘쓰도록 권고했지만, 제대로 지켜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게 임 회장의 호소다.
대표 사례가 동명의 영화 ‘실미도’(2003)다. 영화에서 공작원들을 사형수·무기수·범죄자 등으로 묘사해 명예를 훼손했고, 이것이 영화적 설정임을 설명하는 자막이 부족해 자칫 공작원들이 실제로 간첩이거나 특수 범죄자였다고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부분은 유족회 측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임 회장은 “실미도 영화 자막 수정 처리는 물론, 유족에게 사과한다는 내용의 자막을 추가할 수 있도록 국방부가 가능한 모든 조치를 해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의 탄원서도 제출했다”며 “국방부 또한 실미도 공작원들이 ‘평범한 민간인’이었다는 성명문을 발표해 주길 요청한다”고 했다.
국방부는 2일부터 오는 11일까지 주말을 제외하고 총 8일간 서울 구로구 오류동 옛 공군 정보부대 터에서 다시 유해 발굴 작업에 나선다. 이곳에서도 유해를 발견하지 못하면 또 다른 암매장 추정지인 부평구 인천가족공원 내 팔각정 일대로 옮겨 작업을 이어가야 한다.
임 회장은 “국가가 너무나 원망스럽다. 유족들만 간절할 뿐”이라며 “오로지 바라는 것은 유해 발굴과 명예 회복이다. 혹시라도 유해를 찾지 못한다면, 이에 대비해 국방부가 현행법을 개정해 위패라도 봉안해 모실 수 있는 조치를 취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김희연기자 khy@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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