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째 보호관찰 재범 막기 노력

3월 소년사법통합기관 시범 운영

가족회복 프로그램 보호자도 호응

현장 범죄예방 최선 선수가 절실

신달수 수원보호관찰소 안산지소장
신달수 수원보호관찰소 안산지소장

실력은 남들보다 뛰어났지만 사회적으로 인정을 못 받는 의사를 다루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주인공은 수술방에서 환자를 살리는데 무엇이든지 다하는 외과 전문의였다. 수술과 진료보다는 출세와 병원의 확장을 강조하는 의사 병원장에게 그는 오직 환자를 살리는 데만 열중하는 ‘낭만닥터’라고 말했다.

26년째 누구보다도 한 발짝 먼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보호관찰을 위해 애쓰고 있다. 그래서 적어도 내가 맡고 있는 보호관찰 대상자가 국민의 생명을 빼앗거나, 성폭력을 범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평생을 심한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하는 재범을 막기 위함이다.

충주보호관찰소에 근무할 때였다. 법원이 의뢰한 판결 전 조사 항목에는 피해자에 대한 조사 항목이 있었다. 성폭력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조사할 때마다 가슴이 저며왔다. 어떤 피해자는 학교를 그만두거나 정신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피해자 일상의 삶은 무너져 있었다. 조사에 응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눈물로 답했고, 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가해자에게 강력한 처벌과 재범하지 않도록 국가가 노력해 달라고 호소했다.

아직도 피해자 엄마의 마른 눈물의 통곡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때부터 범죄 피해자들과 범죄로 인해 피해를 당할 수 있는 국민을 위해 뭐든지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

2007년 5월부터 약 2개월간 집단 성폭력을 범한 고교생 9명에 대하여 청주여성의전화와 협력해 전문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초기에 대상자들은 자신들의 잘못과 피해자의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끝나갈 무렵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고 그 속에서 비행청소년들의 재범 방지에 대한 희망도 보았다.

그 이후 비행청소년에 대해서는 현장 중심의 촘촘하고, 될 때까지 끊임없이 확인하는 보호관찰을 진행했다. 더불어 나이, 범죄유형, 성장환경 등에 맞는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실시하였다. 프로그램 진행 비용과 전문 인력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역사회 기업체 등을 방문하여 설득, 극복하였다.

아직도 어느 기업체 복지재단 이사장의 물음을 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에는 어려운 청소년도 많은데 왜 국가가 책임져야 할 비행청소년을 도와달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질문에 나의 답은 명료했다.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과 다른 기관이 없고, 오직 보호관찰관과 보호관찰소밖에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올해 3월부터 보호관찰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소년에 대해서는 성인과 공간 분리를 통한 고위험군 맞춤형 처우로 재범을 예방하는 소년사법통합기관을 전국 3개 기관에서 시범 운영하고 있다.

소년은 성인과 달리 아직 미성숙하고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장시킬 기회가 있으며,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대상이다. 그간 비행청소년들은 성인과 함께 보호관찰소를 출입하면서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범죄자라는 낙인을 받기도 했다. 더불어 촉법소년 등 비행청소년에 맞는 전문 처우 프로그램 진행과 보호자의 협력을 보다 원활하게 이끌어 낼 수도 없었다.

시범 기관인 안산보호관찰소에서는 그간 촉법소년 세 가정에 가족회복 프로그램을 진행하였고 생필품이 부족한 가정에 냉장고 채워주기, 비진학 비행청소년들을 위한 검정고시 공부방 운영, 형제 보호관찰 대상자 집 고쳐주기 등을 실시했다. 다행히도 소년보호관찰 대상자들과 보호자들의 호응은 긍정적이었다.

아직도 보호관찰 현장은 복잡하고 역동적이다. 소년보호관찰 대상자의 변화 가능성을 불신하거나, 현실의 어려움만 토로하며 시간을 보내는 관중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이제 제대로 방향을 잡고, 바로 현장에서 바꿔 가며 범죄를 예방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절실하다.

언젠가는 나의 옛사랑이 될 현재의 보호관찰. 나는 대한민국 낭만보호관찰관이다.

/신달수 수원보호관찰소 안산지소장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