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취임후 대기업 담합 줄줄이 적발

과징금보다 이익 큰 구조적 결함 범죄 반복

美·英·日은 자유경쟁 질서 훼손 ‘일벌백계’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조선 23대 국왕 순조 33년(1833) 음력 2월 초에 서울 장안을 발칵 뒤집은 쌀 소동이 벌어졌다. 단기간에 폭등한 쌀값에 분노한 빈민들이 몰려다니며 곳곳에서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도성 안의 수많은 백성들이 쌀을 못 구해 밥을 거의 짓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도시 빈민들의 난동 와중에 쌀가게 등 가옥 15채가 화재로 소실되었다.

조정에서는 황급하게 포도청 군사들을 풀어 폭동을 진압했는데 짬짜미가 화근이었다. 마포 동막골의 미곡도매상인 김재순이 정종근, 이동현 등 서울 시내 싸전들과 결탁해서 매점매석한 탓에 쌀값이 천정부지로 뛴 것이다. 형조(刑曹)의 조사 결과 이들은 쌀을 창고에 쌓아놓고서도 팔지 않았음은 물론 됫박을 속이고 심지어 쌀을 물에 불려 쌀가마 무게까지 늘렸다. 조정에서는 난동을 유발한 장본인인 김재순, 정종근과 난동 주동자 등 7명을 효수해 저잣거리에 매달아 사건을 마무리했다.

고질적인 담합문제가 새삼 눈길을 끈다. 이재명 대통령은 21대 대통령 취임 당일인 작년 6월4일에 진행한 첫 국무회의에서 경제검찰인 공정거래위원회의 인력충원을 지시했다. 초대 공정위 위원장에는 이 대통령의 ‘경제 멘토’로 불리는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임명했다.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부터 강조한 공정경제 기조 추진의 일환이다.

정부가 ‘민생 담합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월5일 “독과점 상황을 악용해 국민에게 고물가를 강요하는 문제는 국가 공권력을 총동원해 반드시 시정하겠다”고 밝히는 한편 유명무실했던 가격조정명령제 부활을 거론했다. 정부가 담합행위를 한 기업에 대한 처벌뿐 아니라 가격까지 내릴 수 있도록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식품업체들은 정부 감시가 느슨했던 윤석열정부 탄핵정국 때 가격을 무더기로 인상했었다. 2024년 11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6개월 동안에 소비자물가를 구성하는 가공식품 73개 품목 중 52개 품목 가격이 무려 71.2% 인상되었다.

공정위는 기다렸다는 듯이 줄줄이 대기업들의 담합행위를 적발했다. 올해 2월12일에는 CJ제일제당과 삼양사, 대한제당 등이 2021년 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4년여 동안 총 8차례 설탕 판매가격을 짬짜미했다며 제당 3사에 4천억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동안 공정위가 담합 사건에 부과한 과징금 중 ‘2010년 LPG 담합건’(6천689억원)에 이어 총액 기준 역대 2번째로 큰 규모다. 8일 후인 2월20일에는 대선제분, 대한제분, 사조동아원, 삼양사, 삼화제분, CJ제일제당, 한탑 등에 대해 2019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5조8천여억원의 담합 사실을 밝혀내고 담합으로 왜곡된 가격을 정상가격으로 낮출 것을 지시했다.

3월에는 광주광역시 소재 중고교 교복구매 입찰에서 사전에 투찰 가격을 합의한 27개 교복 판매 사업자들에 과징금 3억여원을 부과했으며 4월에는 무림페이퍼, 한솔제지, 한국제지 등에게는 2021년 2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7차례에 걸쳐 인쇄용지 담합혐의로 가격 재결정 명령과 함께 과징금 3천383억원을 부과했다. 서울중앙지검은 같은 달에 무려 10조원대의 전분 및 전분당 가격담합 의혹을 받은 대상·사조CPK·CJ제일제당 3사와 한국전분당협회 전·현직 경영진 20여명을 무더기로 재판에 넘겼다. 10조원대 가격담합 사건은 국내 식료품업계 사상 최대 규모다.

과점기업들의 담합은 자원 배분을 왜곡해서 물가를 끌어올려 민생을 파괴하고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정경유착 등으로 민주정치까지 위협할 수 있어 반드시 척결해야 할 공공의 적이다. 미국, 영국, 일본 등 경쟁국들은 담합을 자유경쟁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범죄로 규정해서 일벌백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기업들은 과거에 한 차례 이상 담합으로 처벌받았음에도 동일한 범죄를 거듭하고 있다. 과징금보다 담합으로 얻는 이익이 훨씬 큰 구조적 결함이 반복 범죄의 원인이다. 로펌들의 배만 불릴 뿐이다. 카르텔과의 전쟁 운운하다 전공의들에 발목을 잡혀 스타일만 구겼던 윤석열정부 시즌2는 안 된다.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