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노동·턱없이 낮은 임금에 현실 참담

체불 적용기준 완화·산재보험 제도 개선

외국인 노동권 보호, K-이민정책의 시작

이세정 목사·前 경기도 복지여성실장
이세정 목사·前 경기도 복지여성실장

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개최한 이민정책 토론회는 현장과의 괴리가 여전하다는 점을 확인해 주었다. 이민청 신설 등 담당 조직 격상, 사회통합, 해외 우수인재 유치 같은 거대 담론에만 치중한 나머지 당면하고 있는 실질적 문제를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서 이주노동자를 마주해온 필자가 보건대, 지금 대한민국 산업계가 당면한 가장 절박한 문제는 중소기업과 농어촌의 생산 현장을 지탱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안정적인 정착과 인권보호다. 만약 이들이 동시에 한국을 떠난다고 생각해보라. 기초 산업은 그 즉시 마비될 것이다. 국가 이민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이미 와 있는 이들의 임금 지급과 숙식 문제 같은 기본권 보장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참담하다. 고된 노동에 비해 임금은 턱없이 낮고, 이마저도 제때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1월 경기도 안성의 가구공장에서 일하던 인도인 근로자 4명이 필자를 찾아왔다. 이들의 체불 임금은 총 1천300만원이었으나 사업주는 판매 대금의 수금 지연을 핑계로 지급을 미뤘다. 고용노동부 평택지청이 이 사건을 검찰에 넘겼고 근로자들은 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민사소송도 진행 중이다. 이처럼 복잡한 절차 탓에 근로자들은 시간만 허비하며 애를 태웠다. 이들은 섭씨 40도를 넘는 가마솥 같은 더위 속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고향 가족들에게 생활비와 학비를 보내주지 못하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다. 실질 구매력을 감안할 때, 한국 돈 300만원은 인도에서 1천500만원을 보내주는 것과 다름없는 큰돈이다. 타국 땅에서 혹독한 겨울 추위를 견디며 동상에 걸리면서까지 일한 대가를 받지 못하니 얼마나 대한민국을 원망하겠는가.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사건은 조기에 간편한 절차로 신고하게 하여 피해 노동자가 신속히 더 나은 사업장으로 옮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현재 국가가 체불 임금을 먼저 지급하고 나중에 청구하는 ‘대지급금(체당금)’ 제도가 있지만 조건과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 국내에 연고가 없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고려해 소액 체불 임금에 한해 적용 기준을 과감히 완화해야 한다. 이것은 일부 사업장만의 일탈이 아니다. 지난 5월18일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노동자 임금체불액은 1천601억원으로 전년보다 44% 폭증했다. 피해 외국인 노동자 수도 3만1천580명으로 35.8% 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토론회에서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은 실효적인 구제 수단이 미비하다고 밝혔으나, 이는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정부의 의지 부족 탓이다. 악덕 사용자의 자산을 즉각 압류하고 단호하게 행정처벌을 집행하면 될 일이다. 국세청이 세금 체납자의 자산을 끝까지 추적해(심지어 외국에 있는 재산까지) 징수하는 것처럼, 강력한 공권력을 외국인 노동권 보호에 적용해야 한다.

비단 임금 체불뿐만이 아니다. 쓰레기 선별장에서 작업 중에 팔에 큰 부상을 입은 또 다른 인도인 근로자는 수술 과정에서 산재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 대금 270만원을 고스란히 본인이 부담해야 했다. 낯선 타국 땅에서 일하다 중상을 입고도 흉터 제거 성형수술은커녕 치료비 일부까지 개인이 떠안아야 하는 현실은 참담하다. 산재보험을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 직원도 이점에 대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인도는 14억 인구를 가진 대한민국의 핵심 협력 파트너다. 한국전쟁 당시 의료지원단을 파견해 도와준 고마운 나라이기도 하다. 많은 한국기업이 진출해 있으며 최근 대통령도 인도를 방문해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기로 약속했다. 이번에 드러난 5명의 사례는 매우 작은 사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이러한 소식이 현지에 조금씩 전해진다면 양국 협력에 걸림돌이 되고 국격이 실추될까 우려된다. 아무리 거창한 무지갯빛 이민정책을 내놓은들,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나라에 기꺼이 정착할 외국인은 없다. 지난 5월20일은 ‘세계인의 날’이었다. 산업 최일선에서 땀 흘리는 이주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를 지켜주는 것, 그것이 바로 선진국가다운 K-이민정책의 시작이다.

/이세정 목사·前 경기도 복지여성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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